“세계 도시 14곳서 살아봤더니… 서울은 일하기 좋고 재능이 모인 곳”

입력 2019-06-03 18:26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를 펴낸 미국인 로버트 파우저씨. 책에는 그가 그동안 직접 찍은 세계 여러 도시들의 이국적인 사진도 담겨 있다. 혜화1117 제공

“어디에서 왔나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남자는 난감하다고 했다. 방랑벽이 있는지 지구촌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남자는 최근 펴낸 책에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런 문장으로 갈음했다. “글쎄, 내가 아는 것은 이것이다. 그동안 거쳐 온 수많은 도시들이 바로 내가 온 곳이다.”

남자의 이름은 로버트 파우저(48). 미국 앤아버에서 태어난 그는 한국 일본 영국 등지에 있는 도시를 오가면서 평생을 살았다. 파우저씨가 쓴 책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 탐구기’(혜화1117·표지)는 그가 ‘도시 생활자’로 살면서 마주한 각 도시의 이면을 그린 신간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출판사 혜화1117에서 파우저씨를 만났다. 책에는 5개국 14개 도시에 관한 이야기가 차례로 등장하는데, 역시 눈길을 끄는 건 대한민국 서울을 다룬 챕터다. 서울은 고향인 앤아버를 제외하면 그가 가장 오래 머문(13년) 도시다.

그는 책에서 서울을 “비빔도시”라고 규정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복잡하고 다채롭게 섞이고 혼합됨으로써 서울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는 게 이런 수식어를 붙인 이유다.

그렇다면 도시로서 서울이 갖는 장단점은 무엇일까. 그는 “서울은 정말 많은 ‘재능’이 모인 곳”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양한 분야의 인재가 모여 있으니 무슨 일을 하건 (도움을 요청해) 함께 일할 사람들이 많다. 뭐든 빨리 처리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고 했다.

“정말 일하기 좋은 도시가 서울이에요. 단점은 너무 거대하다는 거죠. 도쿄랑 비슷해요. 한 도시에 살지만, 사람들끼리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왕래하는 시간도 너무 많이 걸려요.”

누군가 세계 도시 몇 곳을 추려 그곳에서의 삶을 책에 담았다고 하면 여행 정보가 담긴 실용서거나, 진부한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주마간산 수준으로 특정 도시들을 일별하는 게 아니다. 각 도시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됐으며, 이들 도시의 문화적 특성은 무엇인지 깊숙하게 들여다본 내용을 만날 수 있다.

미국인인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썼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요소다. 그는 2008~2012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로 일했을 정도로 우리말에 능통하다. 지난해 그는 한국어로 세계의 몇몇 언어가 어떻게 국경을 넘어 전파됐는지 살핀 ‘외국어 전파담’을 펴내 화제가 됐었다.

인터뷰 역시 한국어로 진행됐다. 그는 한국어 외에도 대단한 ‘외국어 스펙’을 갖추고 있는데, 일본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을 구사할 줄 안다. 차기작을 묻자 그는 “아마도 ‘외국어 학습담’(가제)을 쓸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제가 어떻게 외국어를 공부했고, 앞으로 어떤 언어를 배울 생각인지 다룰 거 같아요. 외국어를 배우는 게 어떤 의미인지 풀어내고 싶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