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시민들 “너무 슬퍼”… 국화와 촛불 ‘다뉴브강 추모의 길’

입력 2019-06-03 04:03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한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의 머르기트 다리에 2일(현지시간) 현지인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놓고 간 꽃과 초, 태극기가 놓여 있다.

헝가리 유람선 허블레아니호 침몰 사고가 난 지 나흘째인 2일(현지시간) 부다페스트 다뉴브강변과 머르기트 다리 위에는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과 촛불이 계속 늘어났다. 한 부다페스트 시민은 한국어로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쓴 편지와 함께 꽃을 두고 갔다. 태극기와 헝가리어로 쓰인 편지, 한국 지폐도 눈에 띄었다.

부다페스트 시민들은 다리 주변에서 헝가리 당국의 실종자 수색을 지켜봤다. 다리 위에서 만난 카탈린(36)씨는 “가해 선박이 헝가리와 관련된 건 아니지만 제 주변 사람들은 깊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머르기트 다리 근처에 사는 레츠키(67)씨도 “누구도 이런 일을 당해선 안 된다. 너무나 슬프다”고 애도를 표했다.

현지인과 한국인,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달 31일 주헝가리 한국대사관 앞에 모여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머르기트 다리에서 동쪽으로 약 2㎞ 떨어진 주헝가리 한국대사관도 추모 공간으로 바뀌었다. 국화와 촛불이 빼곡히 담벼락을 채웠고 고인을 애도하는 메시지가 벽에 붙었다. 31일에는 현지인과 교민 100여명이 대사관 앞에 모여 추모식을 가졌다. 페이스북에서 추모식을 처음 제안한 크리스티나(50)씨는 한국어로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와서 정말 놀랐다”며 “한국과 헝가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형제”라고 말했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7명 중 6명은 지난 30일(현지시간) 병원에서 퇴원한 뒤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시간을 보냈다. 이들을 돌본 부다페스트 한인교회 문창석(64) 목사는 퇴원 당일 생존자 대부분이 음식은 물론 물도 마시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한 분이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해서 종교에 상관없이 다 함께 슬픔과 고통을 토해냈다”며 “31일에도 한 생존자는 ‘물이 무서워 샤워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했다.

문 목사는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배는 거의 멈춰섰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천천히 갔다”며 “한국인들이 탄 배가 방향을 바꿨다는 추측은 터무니없는 얘기”라고 했다. 특히 배 후미에 있었던 생존자 A씨는 ‘크루즈선이 배를 향해 다가왔고 ‘쾅’ 하는 큰 소리가 아니라 ‘콩, 콩’ 하고 두 차례 소리가 나더니 순식간에 배가 뒤집혔다’고 몇 차례나 되풀이해 말했다고 한다.

A씨는 다른 생존자 B씨와 같은 구명튜브를 잡고 구조됐다. 물에 빠진 B씨를 발견하고 A씨가 자신이 잡고 있던 구명튜브를 던졌다고 한다. 문 목사는 “B씨가 의식을 잃기 직전 ‘붙잡아!’라는 외침을 듣고 이성을 찾았다고 했다”며 “튜브를 붙잡고 나서도 A씨가 ‘정신 차려라’ ‘발로 헤엄쳐라’고 소리쳐 두 사람이 함께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존자를 괴롭히는 건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다. 문 목사는 일부 생존자는 타박상이 심한 상태지만 약을 바르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A씨는 남동생이 사고가 나기 전 배 안에서 ‘이 부다페스트 야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온 거야. 눈물나게 행복해’라고 말했다고 했다”며 “A씨가 가족들에게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부다페스트=글·사진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