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가 83개월 만에 ‘적자’로 돌아선다. 경상수지는 외국과 물건·서비스 등을 사고 판 결과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에 경상수지는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은 상품 수출을 수입보다 많이 하면서 2012년 5월부터 경상수지 흑자행진을 이어왔다. 하지만 수출 부진에다 외국인 배당이 겹치면서 올해 4월 경상수지가 ‘마이너스’로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다.
수출 부진이 이어지면 올해 연간 경상수지의 흑자 규모도 흔들리게 된다. 정부 목표치는 연간 640억 달러 흑자다. 경상수지 흑자 축소나 적자는 소비 위축, 대외채무 증가, 원화가치 약세 등을 촉발한다.
2일 정부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 적자 관측은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녹실회의(비공개 경제부처 장관 회의)’에서 불거졌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폭 적자를 보일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4월 경상수지는 오는 5일 한국은행에서 발표한다. 그동안 경상수지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 경제에 ‘효자 지표’였다. 83개월 연속 흑자를 유지했고, 이에 따라 순대외채권(대외채권-대외채무)은 지난해 3분기 말에 사상 최고치인 4678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외국에서 ‘받을 돈’이 ‘갚을 돈’보다 많은 것이다.
그러나 4월 경상수지는 이런 흑자 흐름을 깰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원인은 수출 부진이다. 경상수지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상품수지(수출-수입)다. 상품수지 흑자폭은 지난해 9월부터 줄고 있다. 올해 1분기 상품수지 흑자폭은 5년 만에 가장 작았다. 여기에 4월에는 외국인 배당이 몰리면서 본원소득수지의 적자폭이 커졌다. 외국의 경우 수시 배당이 많아 한국의 투자자들이 해외에서 버는 배상소득은 고르게 분산된다. 이와 달리 한국의 배당은 4월에 집중된다. 지난해까지는 상품수지의 ‘수출 호조’가 이를 방어했다.
경상수지에 도움을 주는 수입 감소도 ‘수출 부진’ ‘외국인 배당’이라는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국은 내수 침체로 수입이 줄고 있다. 때문에 상품수지에서 수출 부진을 수입 감소로 상쇄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수출 부진 충격이 워낙 큰 것이다. 여기에다 서비스수지 개선도 힘을 쓰지 못했다. 한국 여행자가 해외에서 쓰는 돈과 외국 여행자가 한국에서 쓰는 돈의 차이인 ‘여행수지’는 1991년부터 외환위기(1998~1999년)를 제외하고 늘 적자다. 다만 최근 중국과 일본 관광객이 늘고 한국인 여행 소비가 줄면서 감소폭이 개선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상품수지의 수입 감소, 서비스수지 개선이 있지만, 수출 부진과 외국인 배당 등 부정적 요인이 더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상수지 흑자폭 감소는 소규모 개방경제에 치명적이다. 경상수지 흑자 유지는 원활한 달러 공급, 양호한 외화건전성을 담보한다. 당장 대외건전성에 영향을 준다. 과거 경상수지가 흑자에서 적자로 전환된 시기(2010년 4분기~2011년 2분기)에 대외채무 규모는 12.4% 늘었었다. 유입되는 달러 규모가 줄면서, 달러 가치가 오르고 원화 가치는 떨어질 수도 있다. 국내 소득 감소 및 소비 위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일단 올해 600억 달러 이상 흑자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수출 추이를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세종=전슬기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