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미국과 중국 국방수장의 싸움장이 됐다. 이들은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 상대방이 주권을 침해했다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군사적 충돌도 불사하겠다는 강펀치를 교환했다. 미·중 슈퍼파워의 국방부 장관들은 중국 네트워크 장비업체 화웨이 문제를 놓고도 신경전을 펼쳤다. 무역전쟁으로 촉발된 미·중 갈등이 안보 문제를 포함해 전방위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선제공격은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부 장관 대행이 가했다. 그는 지난 1일 샹그릴라 대화 본회의 연설에서 중국이 남중국해를 군사기지로 만들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중국은 다른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은 충돌을 바라지 않지만 전쟁에서 승리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최선의 억지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경우 군사적 카드도 쓸 수 있다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중국에 던진 것이다.
섀너핸 대행은 또 “중국의 행위를 좌시하지 않겠다”며 “과거에는 이런 입장을 밝히는데 약간 조심스러워했다”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남중국해 문제를 비롯해 중국에 대해 공격적인 스탠스로 전환했음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섀너핸 대행은 이어 “화웨이가 중국 정부와 너무 가깝다”면서 “미국은 사이버 공격과 지적재산 절도를 우려하고 있다”고 중국을 자극했다.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2일 미국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양복 차림으로 연설했던 섀너핸 대행과 달리 웨이펑허 부장은 군복 차림으로 단상에 올랐다. 중국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는 샹그릴라 대화 본회의 연설과 질의응답을 통해 “중국은 대만과 남중국해에 대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단호하게 행동할 것”이라며 미국을 정조준했다. 그는 “남중국해는 안정적 상황”이라며 “문제는 최근 몇 해 이 지역 밖에 있는 일부 국가가 ‘항행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힘을 과시하기 위해 남중국해에 들어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해군 함정이 항행의 자유라는 작전을 통해 남중국해와 남중국해 동북단에 있는 대만해협을 통과한 것을 문제삼은 것이다.
웨이펑허 부장은 “만약 누구라도 감히 중국으로부터 대만을 쪼개려 한다면 중국군은 국가의 통일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끝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중 무역분쟁에 대해서도 “그들이 싸우길 원한다면 우리는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중국은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또 ‘미·중 무역협상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라는 백서를 발간하면서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합의되지 않는다”는 강경한 입장을 천명했다. 왕서우원 중국 상무부 부부장 겸 국제무역협상 부대표는 외신기자들을 위해 영어로 이 말을 전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이 막판에 합의사항을 파기해 미·중 협상이 결렬됐다는 주장에 대해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하고 조정하는 것은 정상적인 협상의 일환”이라며 “오히려 미국이 공동인식에 반하는 태도로 협상을 깨뜨렸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에 대해 미국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화웨이가 일본에서 중국 화웨이 사무실로 보낸 화물 2개를 미 운송업체 페덱스가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페덱스 본부로 배송하며 화물의 목적지를 바꾼 사건과 관련해 페덱스에 대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