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년간 프로야구에서는 타고투저 현상으로 홈런이 크게 늘었다. 자연스럽게 부상 위험을 안고 시도해야 하는 도루는 줄고 ‘대도(大盜)’들은 움츠러들었다.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리그 공인구 영향으로 장타가 줄면서 한 베이스라도 더 얻기 위한 도루가 각광받고 있다.
2일 한국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015년 총 도루 개수는 1202개, 이듬해 1058개였다. 그런데 2017년 778개로 확 줄더니 지난해(928개)에도 1000개를 밑돌았다. 장타로 점수를 뽑을 기회가 늘다 보니 무리해서 도루를 시도할 필요가 없었다. 실제 2015~2017년 연평균 1500개 안팎으로 치솟은 전체 홈런 개수는 지난해 역대 최다 기록(1756개)을 경신했다. 이에 4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삼성 라이온즈 박해민은 지난해 역대 최소 기록(36개)으로 타이틀을 차지했다.
그런데 올해는 반발계수가 줄어든 공인구의 영향으로 이날 현재 리그 홈런 개수는 437개(295경기 기준)다. 지난해 동기간 655개(294경기 기준)와 비교했을 때 무려 200개 이상 줄었다. 반대로 도루는 증가했다. 올 시즌 10개 구단은 405개의 도루를 성공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342개)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이런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단이 SK 와이번스다. 지난해까지 ‘홈런 군단’ 이미지를 확고히 했던 SK는 올 시즌 기존 장타력에 기동력을 가미한 섬세한 야구로 1위를 질주 중이다. 염경엽 SK 감독은 시즌 개막 전 “공인구 영향으로 홈런 개수가 20~30%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스피드 있는 야구를 가미하겠다“고 했다. 또 ”발이 빠르든 느리든 모두가 언제든 뛸 준비를 해야 한다”며 “중심타자도 1년에 15번 정도 도루를 시도해 감을 익히게 할 것이다. 발 빠른 타자는 자유롭게 뛰도록 두겠다”고도 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SK는 올 시즌 55개의 홈런을 쏘아 올렸다. 팀 홈런이 지난해 같은 기간(91개)보다 크게 감소했다. 대신 도루 개수가 리그에서 가장 많다. SK는 52개의 도루를 성공, 한화 이글스와 삼성(이상 50개·공동 2위)을 제치고 이 부문 1위에 올라 있다.
특히 기동력이 뛰어난 고종욱을 지난해 12월 트레이트를 통해 영입한 게 주효했다. 올 시즌 14도루를 기록 중인 고종욱은 김상수(삼성)와 이 부문 공동 1위에 올라 타이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승부처에서 도루와 적극적인 베이스 러닝으로 득점에 기여하는 것도 고종욱의 몫이다. 이밖에 도루에 능한 김강민 노수광(이상 8개), 김재현(7개) 등도 SK의 기동력 향상에 힘을 보태고 있다.
대표적 느림보 구단으로 불렸던 두산도 흥미롭다. 두산은 2015년 팀 도루 111개를 기록한 이후로 줄곧 두 자릿수에 그쳐 부문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올해는 벌써 42도루(4위)를 기록했다. 류지혁과 정수빈(이상 9개)이 수시로 대도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