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 장치 걷어낸 심청가 소리만으로 관객 심금 울려

입력 2019-06-03 18:03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 없는 우리 부친을 차마 어이 잊고 가리. 삼백석에 팔려 제수로 가게 되니 불쌍한 아버지를 차마 어이 잊고 가리.”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절절한 창을 듣고 있으면 어느새 가슴 한가득 먹먹함이 차오른다. 5일부터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 오르는 창극 ‘심청가’(사진)는 깊고 유려한 판소리의 매력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판소리의 원형이 진하게 배어있다. 다섯 바탕(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중 애절함이 빼어난 원작의 느낌을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기본 사설 틀을 가져왔다. 다만 완창으로 5시간이 넘는 심청가에서 핵심을 간추려 2시간30분 정도로 다듬었다. 지난해 초연돼 박수갈채를 받으며 매진 행렬을 일으킨 화제작이다.

소리가 가진 아름다움에 오롯이 집중한다는 게 특별하다. 전통극의 현대적 표현을 끊임없이 연구해온 연극계 거장 손진책이 연출했다. 그는 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불필요한 미장센을 걷어내고, 소리만을 위한 무대를 구성했다”고 했다. 라이브 연주는 전통 국악기로만 이뤄지고, 무대 소품 등도 최소화했다.

이유는 뭘까. 손 연출가는 “창극을 서양의 연극 형식에 맞추다 보니 그간 멋진 우리 소리들이 묻히곤 했다. 상상력을 점차 키워나가는 동양 연극의 특성 위에서 맛깔나는 판소리의 매력을 올곧이 드러나게 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올해는 초연 당시 선보인 극의 큰 프레임 안에서 동작이나 연기, 설명들을 조금 더 단순화해 소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한 단계 키웠다”고 설명했다.

소리꾼의 역량이 중요한 작품인 만큼 국내를 대표하는 이들이 나선다. 지난해에 이어 안숙선 대명창과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지난 30여년간 활약한 유수정 창극단 신임 예술감독이 도창(導唱·창극 해설자)을 맡아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손 연출가는 “특별한 수식이 필요 없는 당대 최고의 명창과 베테랑의 무대를 함께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했다.

아름다운 의상도 빼놓을 수 없는 백미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tvN), 영화 ‘해어화’, ‘조선마술사’(이상 2015)에서 관능적인 한복을 선보인 디자이너 김영진이 공연 의상 디자인을 맡았다. 선과 색이 조화로운 격조 높은 한복의 멋을 전할 예정이다.

초연과 마찬가지로 어린 심청과 황후 심청은 민은경과 이소연이 나눠 연기한다. 뺑덕 역 김금미, 심봉사 역 유태평양, 곽씨 부인 역의 김미진 등 유수의 창극단 단원 35명이 무대를 채운다. 손 연출가는 “소리의 정수를 모아놓은 공연이라 볼 수 있다”며 “분칠을 하지 않아도 자체로 아름다운 판소리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느낄 수 있는 무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공연은 16일까지.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