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앉은 손흥민(27·토트넘 홋스퍼)에게 상대였던 모하메드 살라와 요엘 마티프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는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다. 손흥민은 리버풀 응원가 ‘결코 혼자 걷지 않으리(You'll never walk alone)’가 울리는 경기장에서 아버지 손웅정씨와 팬에게 인사를 건넨 후에야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손흥민에게 2일(한국시간) 리버풀과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시즌 대단원으로는 아쉬움이 큰 한판이었다. 2011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던 박지성에 이어 한국 선수로는 8년 만에 꿈의 무대에 올라 풀타임을 소화했지만 준우승에 그쳤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빅 이어(Big·챔피언스리그 우승컵)’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기회 역시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비록 우승컵은 들지 못했지만 손흥민은 이날 토트넘 공격수 중 매서운 움직임으로 몇 차례 상대 골문을 위협했다.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 해리 케인이 모두 나선 ‘DESK 라인’에서 가장 두드러진 모습을 보였다. 후반 34분 페널티박스 외곽에서의 날카로운 오른발 슈팅을 비롯해 3개의 유효슈팅을 때렸다. 이는 팀 내 최다 유효슈팅이었다. 최전방에 있었던 케인, 에릭센과 알리는 모두 각 1회의 유효슈팅만을 기록했다.
외신 등의 평가 역시 비슷했다. ESPN은 손흥민에게 DESK 라인 중 가장 높은 평점 6점을 부여하며 “다른 공격 파트너들과 달리 전방에서 활발하게 존재감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축구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도 손흥민에게 DESK 라인 중에선 가장 높은 평점 6.5점을 줬다. 가디언도 해리 윙크스와 함께 팀 내에서 가장 높은 7점을 부여했다.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 감독은 현지매체 ‘비인스포츠’ 해설가로 나서 “전체적으로 손흥민만이 위협적으로 보였다”며 “특히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의 뒤로 파고들었다”고 평가했다. 케인에 대해선 “준비가 돼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손흥민은 경기 후 “3주간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며 “오늘 운이 조금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이게 축구인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아쉬움을 남기긴 했지만 손흥민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역사를 새로 쓰며 잊지 못할 시즌을 보냈다.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아시안컵 등 바쁜 대표팀 일정 속에서도 챔피언스리그 아시아인 최다 골 기록을 11골에서 12골로 늘렸다. 특히 승부처였던 맨체스터 시티와의 8강에선 1·2차전에서 모두 3골을 터뜨리며 팀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손흥민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4골을 포함해 모두 20골을 기록하며 2016-2017 시즌(21골) 이후 두 번째로 많은 득점포를 가동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을 끝으로 올 시즌을 끝낸 손흥민은 4일 대표팀에 합류해 7일(호주), 11일(이란) 평가전을 치른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