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전동휠체어에 앉은 백발의 70대 노인이 무대 위에서 읊조리듯 노래를 이어 나갔다. 서정적인 멜로디에 얹힌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정덕환(73) 중증장애인의평생일터행복공장만들기운동본부 회장은 31일 서울 종로구 이음센터에서 열린 사단법인 꿈꾸는마을의 ‘창작 꿈꾸는 사람들’ 공연에 특별출연해 지난해 발매한 ‘흔들리며 피는 꽃’을 불렀다. 지난 4월 19일 국민일보에 고용된 ‘국민엔젤스앙상블’(단장 정창교) 소속 장애인 청년 예술가 5명의 연주가 끝난 뒤다.
공연 후 만난 정 회장은 “흔들리는 꽃잎처럼 많은 장애인들이 몸과 마음이 힘들어 낙심하게 된다”며 “그럼에도 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우리 삶도 바로 설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인생은 이 노랫말과 닮았다. 장애인 자립을 위한 피나는 노력의 과정이었다. 국가대표 유도선수였던 정 회장은 연세대에 재학하던 1972년 연습 도중 경추 4, 5번 골절상을 입고 전신마비 1급 장애인이 됐다. 모교에서 유도 코치로 일하고자 했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그는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그는 “예수님을 영접한 뒤 긍정적인 마음을 먹었다. 이후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일하게 해주는 사회를 만들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슈퍼마켓 ‘이화식품’을 운영하며 500만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83년 중증장애인 5명과 함께 서울 구로구에 에덴복지원을 설립해 전자부품 조립업을 시작했다. 문전박대당하고 수해를 입는 등 어려움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98년 경기도 파주에 에덴복지재단을, 2011년 중증장애인 다수고용사업장 형원(馨園)을 세웠다. 현재 이 두 곳에 고용된 장애인만 약 170명으로, 이들은 4대 보험과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보장받고 종량제 봉투와 주방·세탁세제를 만든다. 이렇게 장애인들의 직업재활을 위해 노력해 온 세월이 36년이다.
정 회장은 “장애인 시설은 수용보호시설이 아닌 직업재활시설이 돼야 한다”며 “수혜적 복지의 대상이 아닌 생산의 주체가 됨으로써 장애인이 삶의 주체로 우뚝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민일보의 중증장애인 채용 사례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장애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준 것”이라며 “이런 사례가 주변으로 번져 장애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2015년부터 행복공장만들기운동도 시작했다. 장애인들이 경제적 안정을 넘어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취미·문화생활까지 책임지는 에덴복지재단을 모델로 행복공장 확산을 꾀하고 있다. 최근엔 장애인들이 고부가가치 사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원단을 확보하는 등 신사업을 위한 고민도 하고 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