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둔화보다 더 큰 리스크 부담… 한은 ‘금리 인하’ 딜레마

입력 2019-05-31 04:06

“한국은행이 31일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지만, 더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압도적이다.” ING그룹의 로버트 카넬 아시아·태평양 수석이코노미스트는 30일 논평을 내고 틀릴 줄 알면서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인하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논평에 “(인하를 전망하지만) 그런 결정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담겼다.

카넬 이코노미스트는 “금통위가 발을 끌지 않는다면 한국의 경제 활동이 더욱 튼튼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 경제가 좋은 상태인가”라고 자문했다. 이어 내린 답은 ‘아니요’였다. 카넬 이코노미스트는 또 “한은이 기다릴 때 발생하는 리스크가 있는가”라고 스스로 물었다. 이때의 답은 ‘예’였다.

현재 한국 경제는 기준금리 인하를 주저할수록 경기부양 효과가 줄어드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이다. ING그룹은 지난달 한국 경제의 1분기 역성장을 확인한 뒤 올해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주요 전망기관 가운데 가장 낮은 1.5%로 수정했었다. 오는 7월에 2분기 성적표가 공개되면 1분기에 이어 ‘두 번째 위축’이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ING그룹의 진단이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한은 예상을 조금 빗나가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의 기준금리 동결 결정 직후 “앞으로는 여러 요인에 의해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었다. 대외 환경이 나아질 것이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내릴 필요까진 없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미·중 무역갈등 등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카넬 이코노미스트는 “2분기 지표는 어떻게 정의하든 침체(recession)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대다수 전문가들이 한은의 ‘동결’에 무게를 두는 이유는 기준금리 인하가 야기할 부작용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가계부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를 뛰어넘었고, 경제성장을 제약하는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시티그룹과 JP모건 등 해외 투자은행(IB)들도 가계부채 문제에 따른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했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는 느려졌지만 이미 쌓인 총량이 많고, 비은행기관을 통한 대출이 늘어나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 국면 속에서 최근 급등한 원·달러 환율 역시 기준금리 인하 결정에 부담을 준다. 연초만 해도 1100원대 안팎으로 전망되던 원·달러 환율은 1200원 선 턱밑까지 근접했다. 원화 가치와 함께 한국 금융시장의 수익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금리마저 내려가면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시장은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하 목소리의 소수의견이 등장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금통위는 만장일치로 동결을 결정하면서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전망을 낮춰 “인하의 포문은 열었다”는 해석을 낳았었다. “인하를 고려할 단계는 아니다”고 줄곧 강조해온 이 총재의 톤이 과연 변할지, 변한다면 어떤 수준일지 역시 관전 포인트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