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15년을 일했다. 광고업계는 직업적인 수명이 짧은 축이다. 어느샌가 사내엔 선배보다 후배가 많아졌고 회사 내 피라미드에서 꽤 높은 곳에 위치하게 됐다. 경력이 쌓인 만큼 업무 숙련도는 올라갔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업무에 있어서 칭찬받는 일은 드물어졌다. 내가 일을 함에 있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한 직급이 되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신입사원 시절엔 모두가 나의 윗사람이었고, 이따금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내면 곧잘 칭찬을 받곤 했다. 하지만 연차가 지긋해진 지금은 다르다. 나를 귀애해 줄 윗분들이 손에 꼽을 만큼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가, 이따금 받는 칭찬이 각별하게 기쁘다. 마음속 액자에 끼워두고 내내 바라볼 만큼 말이다. 몇 달 전 존경하는 선배에게 ‘이번에 쓴 그 카피 참 좋더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건조했던 마음에 스프링클러가 터진 듯이 기뻤다. 보드라운 기쁨의 물방울에 마음 바탕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며 문득 생각했다. 날마다 일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업무적인 칭찬은 얼마나 귀한가. 이런 보드라운 관심과 향기로운 말 한마디는 노동하는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하는가.
모처럼의 찬사에 기뻤던 그날, 우연히도 나는 머리를 자르러 자주 가던 미용실에 갔다. 헤어 디자이너의 섬세한 손놀림에 제멋대로 자라났던 머리카락들이 말끔해지니 더없이 상쾌했다. 늘 엇비슷한 머리 모양이지만 그날 따라 유독 마음에 들기도 했다. 문득 오늘 받은 칭찬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용카드를 내밀며 평소에는 잘 않던 이야기를 건넸다. “머리가 산뜻해져서 너무 기분이 좋아요. 마음에 쏙 들게 잘라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찬사를 들은 그분의 얼굴에 조명이 켜졌다. 몇 해나 다닌 미용실인데도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일에 있어서, 내가 능숙한 분야에 있어서 칭찬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만족스러운 사건인가. 내가 하는 일이 그저 밥벌이가 아니라 타인의 감탄을 자아내고, 그의 삶까지 이롭게 하는 행위임을 깨닫는 경험은 얼마나 유쾌한가. 하지만 어떤 이들은 내리 홀로 일해서, 혹은 본인이 사장이라, 때로는 그의 능숙함이 당연해서 점점 칭찬과 멀어진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칭찬을 건네고 싶어졌다. 당신의 능력에, 서비스에, 노동에 무척 만족했고, 감탄했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었다. 유명 CM송 중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는 구절이 있지만, 이런 마음은 말하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사실 낯선 사람에게 칭찬을 건네는 것은 쑥스러운 일이다. ‘굳이…’ 하는 마음이 입술을 다물게 하고, 공연한 어색함이 발길을 돌리게 한다. 나는 그런 순간에 미량의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타인의 업무 수행에 흡족함을 느끼면 주저 없이 칭찬을 건네기로 했다. 어느 바텐더에게 ‘정말 맛있네요. 제가 먹어본 최고의 롱아일랜드 아이스티입니다’라고 말해 보았다. 어떤 택시 기사에게 ‘운전 잘 해주셔서 기차 놓치지 않고 잘 왔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해 보았다. 요가 강사에게 ‘오늘 수업 너무 좋아서 힐링되는 기분이었어요’라고 말해 보았다. 회사 후배에게 ‘오늘 아이디어는 오래 고민한 것이 보여서 유독 좋았어요’라고 말해 보았다. 그리고 나의 칭찬을 들은 이들의 얼굴이 전부 보석처럼 빛나는 것을 보았다.
평소의 나는 카피를 쓰고 시를 쓴다. 카피는 유혹하는 글쓰기로 오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애쓰는 글이다. 시는 파고드는 글쓰기로 읽는 사람의 가슴을 두드리려 애쓰는 글이다. 모두 많은 공력이 필요한 글이다. 한 문장을 쓰는 일에 몇 시간도 걸리고 몇 달도 걸린다. 하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은 다정한 말 한마디는 그토록 공력을 기울인 문장들보다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다.
놀라운 점은 이 행위에 그렇게까지 엄청난 노력이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없이 음식을 삼키려다 그저 건네본 한마디가, 그냥 계산하고 나오려다 공연히 붙여본 말 한마디가, 머쓱해서 관두려다 툭 입에 올려본 말 한마디가 누군가를 기쁘게 한다. 대단한 노력이 필요하지도 않고, 엄청난 지면이 필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칭찬들이 누군가의 하루에 아름다운 파장을 더한다. 이는 언어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홍인혜(시인·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