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가 29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과거 검찰 수사에 중대한 과오가 있다고 결론 냈다. 과거 검찰은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그의 검찰 인맥 간 유착 의혹, 김 전 차관의 뇌물 수수 의혹 등을 규명하지 않았다. 피해 여성 진술이 피해자답지 않다는 점을 부각해 윤씨의 성범죄 혐의도 무혐의 처분했다. 과거사위는 이 같은 지적 사항을 토대로 제기된 각종 의혹에 대한 철저한 검찰 수사를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대검찰청 과거사 진상조사단(조사단)이 지난 27일 제출한 최종 조사 보고서를 심의한 뒤 그 결과를 공개했다. 과거사위가 김 전 차관 사건에 대한 조사단 조사를 의결한 지 1년여 만이다.
과거사위는 검찰의 2013년 부실 수사 의혹이 조사단의 조사 결과 실체로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검찰 과오로 인해 강원도 원주 별장을 둘러싼 성접대·성범죄 진상이 묻혔다고 판단했다. 주요 근거는 검찰이 당시 경찰 수사 기록에 드러난 범죄 정황 다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윤씨의 휴대전화에 있던 김 전 차관의 차명 전화번호, 윤씨 다이어리에 나오는 김 전 차관 관련 내용, 2003년부터 8년간 김 전 차관에게 차명 전화를 제공한 사업가 최모씨의 존재 등을 검찰은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특수강간 등 성범죄) 혐의에 국한해 수사했다”며 “의혹을 원점에서 수사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검찰은 당시 김 전 차관의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된 계좌추적 등 강제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과거사위는 경찰도 수사를 ‘왜곡’했다고 본다. 처음에는 김 전 차관에 대한 뇌물 수사를 벌였으나 이후 명확한 근거 없이 성범죄 혐의만 송치했다는 게 과거사위 판단이다. 검찰은 그에 따라 뇌물 의혹을 수사에서 배제할 수 있었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의 성범죄 수사 또한 여성들 진술에 반대되는 정황만 부각하는 식으로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여성들이 피해자답지 못하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집중했다는 것이다. 과거사위는 “과거 검찰의 직무유기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과거 부실 수사 과정에 대한 검찰 수사를 사실상 권고했다.
과거사위는 윤씨와 그의 검찰 인맥 간 유착 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경찰은 2013년 윤씨 별장 압수수색 과정에서 한상대 전 검찰총장, 윤갑근 전 고검장, 박모 전 차장검사 등 검찰 고위 관계자들의 명함을 확보해 검찰에 송치했다. 과거 검찰은 이들을 조사하지 않았다.
과거사위는 “과거 수사를 보면 김 전 차관을 넘어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으려 한 게 아니냐는 강한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실제 한 전 총장은 윤씨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윤 전 고검장은 수차례 골프 접대를 받은 정황이 최근 조사단 조사에서 드러났다. 이들이 이후 윤씨 관련 사건에 개입해 편의를 봐준 것 아니냐는 게 과거사위의 시각이다. 박 전 차장검사는 윤씨와 2002년부터 친분 관계를 유지하며 윤씨에게 수백만원의 수임료 ‘리베이트’를 송금하는 등 변호사법을 위반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과거사위는 “‘윤중천 리스트’라고 불러도 무방한 한 전 총장, 윤 전 고검장, 박 전 차장검사 등의 유착 관계를 엄중히 수사하라”고 검찰에 촉구했다. 다만 한 전 총장은 “과거사위의 의혹 제기는 사실 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윤 전 고검장도 “과거사위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조사단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해 엄중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윤씨가 강원도 원주 별장 등지에서 촬영한 성관계 영상으로 지인들을 협박해 돈을 뜯어낸 사실에 대해서도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씨가 이 영상들을 여전히 은밀히 보관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대검은 과거사위로부터 조사단 보고서 등 기록을 전달받아 검토한 뒤 조만간 수사 착수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단(단장 여환섭 청주지검장)은 대검 결정에 따른다는 입장이다. 과거사위가 과거 검찰 부실 수사에 대해 강도 높게 질타한 만큼 관련 수사가 진행될 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다음 달 초 윤씨와 김 전 차관을 일괄 기소하며 활동을 마무리하려던 수사단 계획도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의혹은 이번에 전부 털어내야 한다”며 “이번 수사가 또 다른 의혹을 낳아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동성 구자창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