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 넘게 북한 매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북·미 협상 시한을 연말로 정한 상황에서 ‘전략적 숙고’에 들어갔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 국무부는 최근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 북한에 대화를 거듭 제안했다.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김 위원장의 마지막 현장 행보는 지난 9일 평북 구성 지역에서 실시한 단거리미사일 시험발사 현지지도였다. 이후 김 위원장은 20일간 공개 행보에 나서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올해 4차 방중(1월)과 2차 북·미 정상회담(2월), 집권 후 첫 북·러 정상회담(4월) 등 굵직한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 또 제14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와 시정연설,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소화했으며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삼지연군 건설현장 등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이 노동신문에 20일 이상 보도되지 않은 것은 지난 1월 방중 이후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북·미 협상 교착 상태를 타개하기 위한 ‘전략적 숙고’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통상 5~8월은 북한의 집중 현지지도 기간인데, 5월에 현지지도를 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으로 이를 멈추고 있는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현 국면 대응방식에 대해 굉장히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김 위원장 입장에선 최근 잇따른 미사일 도발로 한·미에 ‘화가 났다’는 메시지를 내놨는데, 금방 아무 일 없다는 듯 경제행보를 재개하기는 어렵다”며 “당분간 물밑 접촉 등을 통해 원하는 협상 조건을 만들려 할 것이고, 그때까지는 전략적으로 인내하겠다는 뜻을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건강이상설도 제기된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건강한 체형의 몸이 아닌 데다 통풍을 앓고 있다는 말도 있다”며 “최근 잠행에는 건강상 이유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막후 협상을 이끌었던 앤드루 김 전 미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은 이날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주최한 ‘2019 글로벌 인텔리전스 서밋’에서 “북한이 대화 국면에서 미사일을 개발해 갖고 있었는데 그간 성능을 확인하지 못했고, 이번에 테스트를 한 것”이라며 “(발사가) 성공했으면 앞으로 안 할 것이고, 실패했다면 한두 차례 더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끝나면 대화에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센터장은 “본인(북한)이 원할 때만 소통하고, 원하지 않을 때는 소통을 피한다면 (미국과) 친구가 될 수 없지 않으냐”면서 “(북한과는) 소통하는 방법이 좀 달라서 소통이 잘 안 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미 국무부는 북한 미사일을 대량살상무기(WMD)로 뭉뚱그리면서 민감한 부분을 피해갔다. 모건 오테이거스 국무부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북한 미사일 발사 관련 질문에 “북한의 전체 WMD 프로그램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와 충돌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북한의 발사가 유엔 결의 위반이라는 게 국무부 입장이냐’는 질문에도 “북한의 전체 WMD 프로그램은 유엔 결의에 위반된다”고 반복했다. 동문서답으로 논란을 비켜간 것이다.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또 “미국의 초점은 북한 WMD 프로그램의 평화로운 종결을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미사일을 거론하지 않으면서 북·미 대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북·미) 협상과 논의가 계속 진행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승욱 박재현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