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환율전쟁’이 일촉즉발의 위기를 잠시 벗어났다. 미국 재무부는 28일(현지시간) 발표한 올해 상반기 환율보고서에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자국 통화의 가치를 고의로 낮추는 국가에 대해 상계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중국을 타깃으로 삼았었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이 일단 확전을 자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환율이 미·중 분쟁에서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미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중국을 ‘관찰 대상국’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달러 대비 위안화의 불균형 등에 비춰볼 때 중국의 통화 정책에 상당한 우려를 갖고 있다”고 경고했다.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도 강화했다. 상황에 따라 중국을 향해 휘두를 ‘한 칼’은 남겨둔 셈이다.
미 재무부는 이번 보고서에서 ‘환율 감시망’을 더욱 강화했다. 먼저 평가대상 국가를 기존 13개국에서 21개국으로 늘렸다. 지난해 10월 대상국 가운데 스위스 인도가 제외되고 태국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이탈리아 아일랜드 네덜란드 벨기에가 추가됐다.
환율 조작국 지정 기준도 강화했다. 미국이 다른 교역국을 환율 조작 국가로 규정하는 요건은 총 세 가지다.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200억 달러를 넘거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비율이 3%를 초과하거나, 정부나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이 1년에 8개월 이상 이어지는 경우다. 이를 모두 충족하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고, 두 가지 요건만 충족돼도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돼 감시 대상이 된다.
미국은 여기서 경상수지 흑자 비율을 3%에서 2%로, 외환시장 개입 기간을 8개월 이상에서 6개월 이상으로 강화했다. 미국의 무역수지를 개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중국은 세 가지 기준 가운데 한 가지(대미 무역흑자)만 해당된다. 하지만 419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무역흑자 때문에 감시 대상에 포함됐다. 실제 A4용지 43장 분량 보고서의 상당 부분은 중국이 차지했다. 미 재무부는 중국을 향해 “지속적인 위안화 약세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며 “외환시장을 왜곡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한국은 세 가지 요건 가운데 대미 경상수지 흑자 비율(4.7%) 항목만 해당됐다. 오는 10월부터는 미국의 관찰 대상에서 제외될 전망이다. 관찰 대상국 제외는 2016년 4월 이후 처음이다.
다만 원화의 운명은 미·중 무역협상의 향방에 달린 상황이다. 미·중 간 협상이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급락하고, 위안화와 동조화 현상을 보이는 원화 가치가 ‘유탄’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다음 달 미·중 협상이 재개될 경우 외환시장도 안정세를 찾아갈 수 있다. 문정희 KB증권 연구원은 “미·중 협상이 타협점을 찾을 경우 원·달러 환율도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