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구출된 피랍자 가족 편지 읽으며 외교부 본분 일깨워

입력 2019-05-29 18:49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리비아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가 315일 만에 풀려난 주모씨의 딸이 보내온 감사편지를 강경화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직원들에게 읽어주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 정상 통화 기밀을 유출한 부처인 외교부의 장관 및 직원들에게 리비아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주모(62)씨의 딸이 보낸 감사 편지를 직접 읽어줬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는 기밀 유출에 대해 “변명의 여지없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국민에게 사과하고, 기밀 유출에 연루된 자유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외교부 공무원들을 향해 정치권에 줄 대는 데 혈안이 되기보다 본령의 임무에 충실하라는 일침을 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주씨의 딸이 보내온 감사 편지를 29일 SNS에 공개했다. 딸은 “300여 일의 고통과 충격 속에서 우리 가족을 해방시켜주신 감사함을, 벅참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감사하다”고 썼다. 이어 “우리 가족은 대통령님과 정부를 믿고 의지하는 것 외에는 도저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외교부 트리폴리·아부다비 공관을 비롯해 외교부 직원들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29일 페이스북에 공개한 편지.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전날 6월 초 북유럽 순방 계획을 보고하러 청와대를 찾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외교부 직원 10여명에게 이 편지를 읽어줬다. 집무실에서 편지를 들고 나온 문 대통령은 다 읽은 뒤 별다른 언급 없이 곧바로 순방 보고를 받았다. 외교부는 한·미 정상 통화 유출자에 대한 중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편지를 읽어준 것은 외교부가 정치권을 곁눈질하기보다 리비아 피랍 국민 구출 같은 역할에 전념해야 한다는 당부로 읽힌다.

문 대통령은 29일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주재한 NSC 자리에서는 “국가의 외교상 기밀이 유출되고 이를 정치권에서 정쟁 소재로 이용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며 “공직자의 기밀 유출에 대해 국민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을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고 철저한 점검과 보안 관리에 노력하겠다”면서 각 부처와 공직자들도 복무 자세를 일신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관으로부터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입수해 폭로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과 그의 행동을 옹호하는 한국당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할 수 있는 정상 간 통화 내용까지 유출하면서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권리라거나 공익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정을 담당해봤고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적어도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줄 것을 요청한다”며 “당리당략을 국익과 국가 안보에 앞세우는 정치가 아니라 상식에 기초하는 정치라야 국민과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당은 “무능 외교”라고 받아쳤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익이 훼손된 게 아니라 대통령 체면이 훼손됐기에 난리법석인 것”이라며 “정책은 실종된 채 정권코드로 공무원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그만하라”고 했다. 전희경 대변인도 “야당 의원을 탓하기 전에 청와대가 사실무근이라며 잡아뗀 것이 어떻게 기밀누설이 될 수 있는지 거짓말부터 사과하라”며 “한·미동맹 균열과 최악의 대일 관계, 중국의 무시라는 외교 ‘폭망’ 사태부터 바로잡는 것이 기본과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강준구 김용현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