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으로 문학·철학·과학의 경계 넘나들다

입력 2019-06-01 04:01
신간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은 시간여행을 다룬 책이다. 시간여행은 1895년 영국의 H G 웰스가 쓴 소설 ‘타임머신’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지만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픽사베이

전작의 명성 덕분에 유심히 보게 되는 작가가 있다. 신간 ‘제임스 글릭의 타임 트래블’의 저자는 제임스 글릭(65)이다. 그는 전 세계인에게 나비 효과를 각인시킨 베스트셀러 ‘카오스’의 저자다. 카오스는 미 주간 ‘타임’의 명저 100선에 올랐고 미국에서만 100만부 이상 팔렸다. 정보의 역사를 다룬 ‘인포메이션’은 뉴욕타임스가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고 영국왕립학회 과학도서상을 수상했다.

신작은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문학, 철학, 과학의 경계를 넘나든다. 공상과학소설 ‘타임머신’(1895)을 시작으로 성경의 창세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엘리엇의 시 등 시간에 대한 다양한 글을 인용한다. 상대성이론을 제시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시간성 폐곡선을 그린 수학자 괴델,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나온다.

영화 ‘터미네이터’나 ‘인터스텔라’의 장면도 삽입된다. 이 책은 다양한 예술 장르가 시간여행을 어떻게 차용하고, 과학자나 작가들은 시간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시간의 개념에 대한 역사부터 시간여행 개념을 도입한 소설과 영화를 거쳐 시간에 대한 인식을 확장시킨 수학과 과학의 개념을 망라한다.


부제는 ‘과학과 철학, 문학과 영화를 뒤흔든 시간여행의 비밀’. 글릭은 시간여행을 위해 ‘SF의 아버지’로 불리는 웰스의 ‘타임머신’을 가장 먼저 소환한다. 타임머신은 시간여행자가 지인들에게 자기가 경험한 미래 세계를 이야기해 주는 액자소설 형식이다. 시간여행자는 소설에서 시간이 4차원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입체는 네 방향으로 연장된 부분을 가져야 합니다. 네 방향이란 길이와 너비와 두께 그리고 지속 시간이지요.”(‘타임머신’ 중) 이 얘기는 당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된다. 컬럼비아대 월터 피트킨 교수는 “현대 픽션에서 끌어낸 경박한 사례”라고 혹평했다. 시간은 일정한 속도로 흐르며, 이 속도는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같다는 것이다.

뉴턴도 “시간은 어떤 것과 관계없이 본성에 따라 똑같이 흐른다”고 했다. 나중에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상대적이라고 밝혔다.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이 시간의 본질을 밝혀주는 단서가 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친구였던 수학자 괴델은 또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에서는 과거로 여행하는 것 또는 과거를 경험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이 경우 제약이 따른다.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간여행자가 이전 시간으로 돌아가 자기 할아버지를 죽일 수는 없다. 과거와 현재 시간의 모순이 발생한다. 자신의 출생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호킹은 이에 대해 순서보호가설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물리학적으로는 과거로 가는 시간여행이 일어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가설의 증거는 이렇다.

“우리가 미래에서 온 관광객 무리에게 침략당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보건대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실험 증거가 있다”고. 우리가 미래에서 온 시간여행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시간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스꽝스러운 말장난 같다. 하지만 소설 속 이야깃거리에 불과했던 시간여행은 이토록 진지한 수학과 물리학의 탐구 대상이 됐다.

시간 자체에 대한 탐구와 통찰도 돋보인다. 무시간성은 신의 최고 능력 중 하나라고 한다. 조물주는 시간과 동떨어져 존재하며 시간을 초월한다. 어쩌면 불멸의 존재가 시간 속에서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경험을 향유하고 의지를 관철하는지도 모른다. 현인들은 “현재를 살라”고 충고하지만 저자는 시간의 가능성과 역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든다고 강조한다.

시간여행은 소설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지만 우리의 세계관을 확장시켰다. 물리학에서 시공간은 단지 시공간인 반면에 문학에서 시공간은 상상력이 허락하는 만큼의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소설에는 시계가 여러 개 있을 수도 있고, 뒤로 가거나 아무렇게나 회전하는 시계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잡한 문학의 시간을 받아들이면서 상상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우리는 이미 시간여행 이야기에 익숙하다. 시간여행 개념이 없다면 영화 ‘터미네이터’ ‘인터스텔라’ ‘어벤져스: 엔드게임’도 없다. 저명한 교양과학 작가인 글릭은 이 책에서 자신의 영역을 문학과 영화, 대중문화 일반으로 넓힌다. 워낙 소재가 다양하고 범위가 방대해 복잡하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시간여행을 이만한 이야기로 풀어놓을 작가는 역시 글릭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릭은 시간여행을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역사를 위해. 미스터리를 위해. 향수를 위해. 희망을 위해. 우리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기억을 탐색하기 위해. 우리가 살았던 삶, 유일한 삶, 하나의 차원, 처음부터 끝까지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독자들은 시간여행이라는 개념이 왜 우리를 사로잡았고 세상을 바꾸는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