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한·미 정상 통화 유출’ 참사관·강효상 의원 형사고발

입력 2019-05-29 04:02

외교부는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유출한 주미 한국대사관 소속 K참사관과 통화 내용을 K참사관으로부터 입수해 폭로한 강효상(사진) 자유한국당 의원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 K참사관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강 의원은 ‘야당 탄압’이라고 반발했다. 이번 사태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조윤제 주미대사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교부 당국자는 28일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외교 기밀을 유출한 직원과 (기밀 유출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강 의원을 형사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전날 외교부는 보안심사위원회를 열어 K참사관 등 주미대사관 외교관 3명에 대해 중징계를 요구하기로 결정했다.

K참사관 외에 징계를 받게 된 2명은 비밀을 누설하지는 않았으나 관리업무 소홀로 보안업무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파악됐다. 28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주미대사관 A참사관은 외교부 본부에서 보내온 한·미 정상 통화 관련 전문을 출력해 열람 권한이 없는 K참사관에게 전달했다. 외교부는 K참사관과 A참사관에 대해서는 30일 자체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고위 외무공무원인 다른 1명에 대해선 관리 책임을 물어 중앙징계위원회에 회부할 방침이다.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민주당 의원은 “정상 간 통화 내용은 가장 엄하게 취급돼야 할 비밀이며, 일부를 이야기하는 것도 비밀 누설”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에서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K참사관이 지난 3월에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만남이 무산된 경위를 유출했다고 보고했다. 또 4월에는 한·미 정상회담 관련 실무협의 내용을 누설했다고 보고했다.

K참사관은 이날 공개한 입장문에서 “(내가 설명해준 내용을 강 의원이) 정쟁의 도구로 악용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더욱이 ‘굴욕 외교’로 포장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어떤 의도를 가지고 강 의원에게 비밀을 누설한 것은 아니라는 점만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방한 가능성과 관련된 통화 요록의 표현을 다른 표현으로 풀어서 설명하고자 했으나 급하게 설명하다 실수로 일부 표현을 알려주게 됐다”고 해명했다. K참사관은 지난 3월와 4월의 외교 기밀 2건의 누설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K참사관을 대리하는 양홍석 변호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 26일 귀국한 K씨에게 나흘 만에 징계위에 나오라는 건 사실상 해명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라며 “외교부에 징계위 개최 연기를 신청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K씨는 징계위에 출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 의원도 입장문을 통해 “눈엣가시 같은 야당 의원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고 있다”며 “국익을 위한 당연한 의정활동을 기밀 유출로 몰아가려는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친한 고교 후배(K참사관)가 고초를 겪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고 했다.

일각에선 외교부가 여당 의원이 연루됐던 과거 유사한 유출 사건과는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교부 출신 이종헌 전 청와대 행정관은 2006년 3급 비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록을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에게 유출했다. 이 전 행정관은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고, 그와 최 의원에 대한 형사고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이상헌 신재희 이형민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