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모(46)씨는 지난 주말 자녀와 서울 용산구 한강공원에 나들이를 갔다가 중고생 한 무리가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옆에서 지켜보니 음식 배달앱을 통해 치킨과 족발, 술을 주문한 이들 10대는 별 다른 확인 절차 없이 술을 전달받았다.
청소년들이 배달앱을 악용해 주류를 구매하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단속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음식점주들이 배달 인력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대행서비스 업체로 바꾸면서 10대 음주단속에 구멍이 생긴 셈이다.
현재 배달앱으로 술을 주문할 경우 성인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비대면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성인인 지인의 휴대전화로 인증을 하는 등 ‘꼼수’를 부리면 얼마든지 주류 구입이 가능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1월 발표한 ‘2018 청소년 매체 이용 및 유해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초중고생 1만5000명 중 11.7%가 술을 대리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고, 그중 32%가 구매방법을 ‘배달음식’으로 꼽았다.
미성년자에 대한 주류 판매 책임을 음식점주에게만 지우고 있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미성년자에게 주류를 판매한 음식점주는 식품위생법에 따라 1차 위반 시 영업정지 2개월, 2차 위반 시 3개월, 3차 위반 시 영업소 폐쇄 처분을 받는다. 또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배달대행은 배달을 대신하는 조건으로 가맹 음식점으로부터 월간 회비와 배달요금을 받아 대행 기사에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돼 주류 판매의 책임을 면하고 있다. 배달앱 역시 단지 음식 배달을 ‘중개’했다는 이유로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는다.
배달대행 기사가 술을 주문한 고객을 대면했을 때 청소년으로 의심되면 신분증 검사를 해야 하지만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치킨집을 운영 중인 박모(51)씨는 28일 “배달대행 기사를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음식을 제대로 전달만 해줘도 감사할 뿐”이라며 “다른 음식점의 배달도 밀려 있는 상황에서 기사에게 신분증 검사까지 부탁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말했다. 실제 음식배달 대행업계에 따르면 올해 한 달 평균 배달 주문은 1억5000만건을 넘길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억건에서 50%가량 성장한 규모다.
점주들 역시 피해를 호소한다. 족발집을 운영 중인 김모(54·서울 영등포구)씨는 “얼마 전 10대가 배달앱을 통해 술을 주문했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가 신고를 해 영업정지를 당할 처지에 놓였다”며 “주문한 사람이 청소년인 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대 교수는 “미성년자들이 언제 어디에서나 술을 구할 수 있는 환경도 문제지만 음주 이후 청소년들이 2차 사고에 노출될까 우려된다”며 “단기적으로 어떤 상황에서건 대면 상태에서 엄격한 신분확인 절차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더 나아가 주류 판매일수와 판매시간 제한, 판매점 밀도 제한 등 정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