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중국식 ‘독재자본주의(authoritarian capitalism)’와 기존 ‘서구 체제’의 대결이 펼쳐지기 때문이란 분석이 제기됐다. 중국은 서구의 룰대로 체제를 변화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자체 독재자본주의 모델을 고수하며 세계에 경제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오히려 러시아와 ‘밀월 관계’를 강화하고 유럽 국가들을 집중 공략하면서 노골적으로 반미 전선 구축에 나섰다. 결국 중국이 서구 체제에 먹히느냐, 서구가 중국 체제에 흡수되느냐를 가르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 미 행정부는 중국이 1970년대 개방 이후 자국 경제체제를 업그레이드해 주류 세계 경제의 일원으로 편입될 것으로 보고 대중 정책을 펴왔지만 미·중 협상을 거치며 이런 믿음이 깨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현지시간) 분석했다.
중국은 자국 경제 규모가 커지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자 서구의 금융·무역 시스템 편입을 거부하고 독재자본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몰고 온 것은 서구 금융체제 탓이며, 서구식 민주주의는 쇠락해 중국에 맞지 않는 모델이라고 보고 있다.
진커위 런던정경대 교수는 “중국은 현행 시스템에 들어가기보다는 자국을 새로운 시스템의 창시자로 여긴다”며 “서구식 금융 지혜, 자유민주주의 모델이 설득력 없고 와해되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누가 누구를 통합하고 있는가. 중국이 서구 세계로 흡수되는가, 아니면 서구가 중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체제로 흡수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블룸버그통신은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돼 양국이 상대 수출품 전체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2021년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이 6000억 달러(약 711조원) 손실을 볼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관세장벽에 따른 교역 감소와 주식시장 침체, 소비와 투자 위축까지 반영해 최악의 시기에 미칠 타격을 추산했다. 또 관세전쟁이 격화되면 중국에 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대만, 말레이시아 등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평가됐다.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러시아 등 동유럽 3국을 방문해 ‘반트럼프’ 전선 구축에 나선다. 시 주석은 다음 달 6~8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국제경제포럼에 참석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갖는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시 주석은 또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가 열리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를 방문하고, 타지키스탄 두샨베에서 열리는 지역안보포럼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이는 러시아 및 동유럽을 중국의 우군으로 확실히 붙들어두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 회동은 4월 말 베이징 만남 이후 한 달여 만이다. 두 정상은 미국의 대중 관세 부과나 화웨이 거래금지 조치 등에 대한 공조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SCMP는 전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