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으로 페미니즘 물결의 선두에 서 있는 작가 조남주(41)가 장편소설 ‘사하맨션’(민음사)으로 돌아왔다. 조 작가는 2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신간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밀입국자, 노인, 여성,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의 연대를 담았다”며 “등장인물들은 패배의식을 내면화한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자기 자리를 바꿔간다”고 말했다.
사하맨션은 가상공간인 퇴락한 맨션을 배경으로 난민들의 공동체를 담은 소설이다. 그는 “82년생 김지영이 처음부터 전체 줄거리를 구상해 쓴 소설이라면 사하맨션은 그런 계획 없이 이 사회에 갖게 된 의문이나 공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반성하며 내 방식대로 그 답을 풀이한 ‘오답노트’와 같은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살인을 저지른 도경과 그 누나를 중심으로 한쪽 눈이 없는 사라, 주민권이 없는 은진, 도망쳐 온 꽃님이 할머니 등은 사하맨션에서 서로 의지한다. 1993년 철거된 홍콩의 구룡성채라는 마을이 사하맨션의 모티브가 됐다. 조 작가는 “구룡성채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었는데, 버림받은 사람들의 자생적 공동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사하’는 인간의 거주지 중 기온이 가장 낮은 영하 70도를 기록하는 곳으로 러시아 연방에 속한 공화국 이름이다. 연교차가 100도 이상 나지만 세계 다이아몬드의 50%가량이 매장돼 있다고 한다. 그는 “사하맨션 거주자들은 혹독한 환경 속에 살지만 보석 같은 사람들이라는 희망의 은유로 제목을 봐달라”고 했다. 전작이 페미니즘 소설이라면 신작은 소외와 연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2012년부터 쓴 이 작품에는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촛불집회 등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많다. 조 작가는 “처음 소설을 쓸 땐 이 사회가 과연 주류에서 밀려난 이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졌고,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지금 퇴보하고 있는가를 묻게 됐다”며 “이 소설에는 역사는 진보한다는 내 믿음이 담겼다”고 했다.
‘82년생 김지영’은 국내에서 100만부 넘게 팔렸고 일본과 대만 등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그는 이런 반응을 보면서 “소설이 사회에 영향을 주고 시대 변화와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소설 속 김지영은 그 자리에 머물지만 독자들은 소설을 읽은 뒤 자기 삶에서 그 이야기를 이어 쓰면서 살아가더라. 소설이 바깥으로 확장되는 듯한 쾌감을 느꼈다”고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