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30일] 진정한 자유인, 빠삐용이 되자

입력 2019-05-30 00:07

찬송 :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218장(통 36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18장 21~22절


말씀 :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1973년 미국에서 제작된 ‘빠삐용’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배우 스티브 맥퀸과 더스틴 호프만이 주연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실화를 근거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빠삐용 역을 맡은 스티브 맥퀸의 실제 주인공은 ‘앙리 샤리에르’라는 사람인데 1930년, 프랑스 파리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살인죄로 체포돼 감옥에 갑니다. 그를 체포한 검사는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됐고 샤리에르가 범인이 아닌 걸 알면서도 이 검사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 죄를 뒤집어 씌웁니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샤리에르는 탈출을 시도했고 마침내 1941년, 아홉 번째의 시도 끝에 성공해 원수를 갚으러 떠납니다.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빠삐용이 상어가 우글거리는 악마의 섬에서 야자수 열매로 만든 작은 배를 타고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친구의 탈출을 보고 있던 더스틴 호프만의 대사가 이렇습니다. “그대가 아무리 이 섬에서 탈출해도 자신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여전히 감옥 속에 있는 거야.”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얼마나,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할까요. 베드로도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한대의 용서를 의미합니다. 어떻게 이런 용서가 가능할까요.

신앙인의 삶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며, 둘째는 이웃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받은 은혜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사랑으로 투영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 열매는 사랑과 용서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랑과 용서의 근거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과 용서는 그 사람의 믿음의 얼굴이 됩니다.

영화 빠삐용에서는 나오지 않는 영화 이후 이야기가 있습니다. 샤리에르는 이후 조국 프랑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남미를 전전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공소시효가 끝나는 1967년, 61세가 되어서야 자신에게 죄를 씌운 검사를 찾아가지만, 원수 갚는 일이 덧없음을 깨닫고 자서전이자 영화 원작인 ‘빠삐용’을 썼습니다.

샤리에르는 30년 증오를 용서로 풀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내가 복수를 포기한 대가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해달라고.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너는 이겼다. 너는 자유롭고 사랑받는 미래의 주인공으로 여기 있다. 네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들의 잘못을 묻으려면 꽤 큰 무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무덤은 갈보리 십자가 언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인류를 구원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리 각자는 진정한 빠삐용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도 : 주님, 십자가의 사랑을 내 삶에 비추며 살게 하옵소서. 원수 갚는 일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옵시고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최규영 목사(일본 동경주사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