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주일학교 다닐 때 교회에서 봤던 영화의 한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일제 강점기 주기철 목사의 생애를 그린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77년작)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계시다면 당신을 구해줄 것이니 이 못판 위를 걸어봐라.’ 일본 순사들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감옥에 갇힌 주 목사를 끌고 나와 못판 위를 걷게 했다. 주 목사는 찬송가를 부르며 못이 촘촘히 박힌 널빤지 위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걸었다. 그때 부른 찬송이 ‘저 높은 곳을 향하여’다. 맨발에서는 피가 흐르고 때론 휘청거리면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라는 일제의 명령을 거부했다. 주 목사는 널리 알려진 대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항일운동을 하다가 1938년 검거돼 7년간 감옥에 갇혀 있다 광복 직전인 1944년 순교했다.
얼마 전 주 목사의 손자인 주승중 주안장로교회 목사가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에서 할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전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문제 많은 그레데에 남겨진 디도 같은 사람이었다”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스러운 곳에 남겨두실 때가 있는데 그건 남은 일을 정리하기 위해, 부족한 일을 바로잡기 위해서다”라고 했다.
일제의 고문은 끔찍했다. 주 목사가 가석방돼 잠시 나왔을 때 할머니에게 하소연한 것을 아버지가 들려준 적이 있다고 한다. 가장 힘든 고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잠을 안 재우는 것. 정신이 혼미해져 자신도 모르게 우상 앞에 절할까봐 가장 두려웠다고 했다. 또 하나는 아랫도리를 벗긴 채 널빤지에 올려놓고 밧줄로 묶어 꼼짝 못하게 해놓고 요도에 쇠꼬챙이를 쑤셔넣는 것이었다. 칼로 아랫도리를 저며내는 듯한 고통에 몇 번씩 기절하면서 주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께 “내 영혼을 거둬가 주소서”라고 울부짖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고문을 당한 뒤에는 한 달, 두 달 소변을 볼 수 없어 기어다녔다.
7년간 혹독한 고문은 계속됐다. 언젠가 할머니가 면회 가서 솜 넣은 바지저고리를 건네자 주 목사는 “제발 옷 속에 솜을 넣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할머니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에 불도 안 때는 감옥에서 동상 걸리고 살이 썩으면 어쩌느냐”고 걱정했다. 그러자 주 목사는 입을 열면 엄살이 될 것 같아 하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놨다. 고문이 끝나면 두툼한 솜이 피에 흠뻑 젖어 마르지를 않는다. 터진 살에 피와 고름이 섞여 얼어붙으면 그것이 다시 칼처럼 살을 찢는다고 했다. 그 고통 속에서도 주 목사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내 의지가 있다면 그것도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의 고통을 겪으신 주님 앞에는 말할 수 없는 죄악이다”고 했다고 한다.
믿음이 약한 인간들은 고난이 닥쳐올 때면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의심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내할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 “우리의 약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실 기회가 된다”는 위로도 정작 내가 고통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황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외아들을 잃은 소설가 박완서의 고백처럼 만만한 게 신이다.
남편을 잃고 두 아들마저 먼저 떠나보낸 나오미는 며느리 룻과 함께 1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올 때 사람들이 “나오미냐”고 하자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다고 했다. 나오미는 ‘기쁨’, 마라는 ‘괴로움’이란 뜻이다. 그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고 했다.(룻기 1장 19~21절) 그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고통을 당하면서도, 죽음에 이르러서도 원망해서도 안 되고, 멈춰서도 안 된다는 걸 보여준다. 어거스틴은 “믿음은 이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라고 했다. 에포케(판단중지)라고도 했다. 그는 참회록에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로 그 넓이와 무게와 부피를 제한할 수 없다. 하나님의 무한성을 결코 인간의 유한성 속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고 고백했다. 병마와 싸우거나 경제적 문제, 가정 문제로 힘든 우리도 지금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위장된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명희 종교국 부국장 mheel@kmib.co.kr, 영상=김평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