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제주도 4년차 이주민의 드라이브 코스

입력 2019-06-01 04:03

제주에 이주하기 전 제주에 오면 나는 항상 해안도로를 찾았다. 제주공항을 기준으로 서쪽으로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을 지나 대정읍 모슬포까지 바다 구경을 하며 천천히 드라이브를 하고 동쪽으로 조천읍, 구좌읍, 성산읍, 표선읍으로 해서 서귀포로 가곤했다. 특별한 볼일이 있을 때가 아니면 가능한 한 바다와 접한 해안도로를 찾아다녔다. 골프가 아니면 산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제주도 하면 바다니까.

3년 전 제주로 이주한 뒤에도 여전히 바다와 접한 해안도로 곳곳을 누볐다. 바다와 마을 구경도 하지만 한편으론 낚시하기 좋은 포인트를 눈여겨보기도 했다. 제주시 삼양동에서 조천까지는 포구에서 포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가 있지만 완전하게 연결되지 않아 큰길로 나왔다 다시 해안도로로 들어가야 한다. 구좌읍 김녕부터 성산읍까지는 바닷가로 달리는 해안도로가 온전해 바다경관 구경에는 그만이다. 성산에서 서귀포까지는 다시 군데군데 끊어진다. 서쪽 애월, 한림, 대정도 바닷가 경관은 아름답지만 곳곳에서 끊어져 큰길로 나왔다 들어가게 된다.

해안도로가 끊어져 나와야 하는 그 큰길이란 제주도를 원형으로 한 바퀴 도는 일주도로를 말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기준으로 동쪽은 일주동로, 서쪽은 일주서로라고 부른다. 1960년대부터 포장하기 시작해 71년 너비 4m의 포장도로로 완공했는데 이전까지 버스로 제주도를 일주하는 데 12시간 걸리던 것이 6시간으로 단축됐다고 한다. 이후에도 확장과 노선 변경이 이어져 지금은 왕복 4차로 국도로 제주도의 산업과 생활권을 크게 바꿔놓았다. 일주도로는 제주도의 주동맥선이라 할 수 있다.

제주도를 크게 돌지 않고 한라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대한 열망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다. 처음 뚫린 것은 516도로다. 62년 군사정권 시절 시작해 7년 만인 69년 왕복 2차로로 개통했다. 이 도로 개통으로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5시간 걸리던 것이 1시간 남짓으로 줄었다. 제주도 북쪽과 남쪽을 관통하는 도로는 이후 1100도로, 평화로, 번영로, 조남로 등이 만들어지며 유통, 관광 등 제주도의 모든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남북을 연결하는 이 종주도로는 나무숲이 터널을 이루기도 하고 정상에서 멀리 바다를 바라볼 수도 있어 언제나 새로운 느낌을 준다.

제주도 이주 4년차가 된 나는 요즘 중산간도로에 빠져 있다.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연결된 중산간도로는 해안 쪽으로 지나는 일주도로보다 해발 200~400m의 한라산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 제2우회도로라고도 한다. 오름을 끼고 돌고 낮에도 어두운 방풍림숲을 지나기도 한다. 커다란 목장에 말들이 풀을 뜯고 통행량도 많지 않은 길가에 커피숍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는 젊은이도 있다. 건축 잡지에나 나올 법한 멋진 집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조립식 작은 집에 사는 노부부는 여유롭게 화단에 물을 준다. 이름도 모르는 마을 도로에 차를 세우고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텃밭에 심은 고추를 따는 아낙, 햇볕 좋은 마당에 고사리를 말리는 할머니 등 제주도의 정겨운 모습을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주한 지 3년이 지난 나는 그동안 가보지 않은 길을 열심히 찾아 다녔다. 도대체 궁금한 건 참을 수 없어서. 아름다운 바다, 숲의 오랜 기억 곶자왈,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마을을 지켜보고 있지만 이주 10년차,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 산 제주 토박이들은 내 글을 보고 지금 겨우 그 단계에 있군 하고 웃을까 부끄럽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