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국가정보원장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강남 한정식집 만찬’에 대해 야당은 일제히 “부적절한 만남”이라고 비판했다. ‘국가 정보기관 수장과 여당 총선 기획 책임자의 비밀회동’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워 국정원의 정치 개입을 의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에 여당은 “사적인 만남을 정략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고 맞섰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7일 기자들과 만나 “국정원은 선거에 개입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만약 (회동이) 총선과 관련된 것이라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민감한 정보가 모이는 국정원의 수장과 집권 여당 싱크탱크의 수장이 만났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자리는 국정원장도 불러낼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이었다. 청와대발 권력형 공천의 칼바람이 불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사적인 지인 모임’이었다는 양 원장 해명에 대해 “국정원장 자리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국민을 우롱하는 무책임한 설명”이라고 반박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장시간 독대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 개입 의혹을 살 소지가 충분하다”며 “즉각 (국정원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정보위원회를 소집해 사실관계를 파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민주평화당과 정의당 역시 각각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자가 지난 정부로부터 배운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독대 의혹이 사실이라면 촛불의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논평을 내고 의혹 규명을 촉구했다.
전현직 정보위원장들도 두 사람의 회동을 비판했다. 현직 위원장인 이혜훈 바른미래당 의원은 “만약 두 사람이 만나 총선 전략을 논의한 것이라면 ‘초원복집 사건’(1992년 김기춘 법무부 장관과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민주자유당 김영삼 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자는 내용의 대책 회의를 한 사건)이 연상된다”며 “정보위원장인 나도 1분 이상 서 원장과 독대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직전 정보위원장인 이학재 한국당 의원은 “국정원장의 정치 개입은 과거 국정원의 아주 큰 과오였고, 그것을 파헤쳐서 정권을 창출한 것이 현 정부”라며 “국정원장이 정치적 행보를 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회동 소식에 정보위 소집을 추진했으나, 한국당 측이 “먼저 국회 정상화가 돼야 정보위를 열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양 원장이 오랫동안 외국에 있다가 국내에 왔으니 한번 만난 것 아닌가. 그 이상 이하도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밥 먹은 걸 갖고 ‘개입했다’, ‘권한 없는 부당한 일을 했다’고 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 입장을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지호일 이형민 김성훈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