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 사고 쌍방과실?… 30일부터 추월차량이 ‘100% 과실’

입력 2019-05-27 19:04 수정 2019-05-27 22:21

중앙선이 점선인 도로를 달리던 A차량은 뒤따라 오던 B차량의 무리한 추월 시도로 추돌사고를 당했다. 정상 속도로 주행하던 A차량 입장에서는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 하지만 A차량은 보험사로부터 ‘쌍방과실’ 안내를 받았다. 현행 규정은 A차량이 추월 양보를 위해 우측 서행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20%의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B차량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 차량이 피할 수 없는 사고의 경우 가해자 책임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실선 차로에서 발생한 추월사고에도 뒤따라 오던 차량에 ‘일방과실’(과실비율 100대 0)이 적용된다. 자전거 전용도로를 침범해 자전거를 치거나 회전교차로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과실비율 합의를 위한 객관적 기준이 마련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자동차 사고 과실비율 인정 기준 개선 방안’을 30일부터 시행한다고 27일 밝혔다. 과실비율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결정한다. 보험사의 보험액, 상대 보험사에 대한 구상액도 과실비율을 근거로 산정된다. 개선안은 일방과실 적용 기준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금까지는 피해자가 피할 수 없었던 사고에 대해서도 손해보험사가 관행적으로 쌍방과실을 유도한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 차대차 사고 과실비율 기준 57개 가운데 일방과실이 인정되는 기준은 9개(15.8%)에 불과했다.


좌회전 노면표시 차로에서 난 직진사고가 대표적이다. 좌회전 신호에 좌회전 노면표시 차로에 있던 차량이 직진하고, 직진·좌회전 노면표시 차로의 차량이 좌회전하다 사고가 나면 현재는 좌회전 차량에 10% 과실을 물었다. 앞으로는 좌회전 차로에서 직진한 차량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 같은 차로에서 직진·좌회전 신호를 받아 직진하다가 선행하던 좌회전 차량을 쳤을 때도 100% 과실로 보기로 했다. 이전에는 기준이 없었다.


회전교차로나 자전거 도로 등 새로운 교통 환경에 따른 기준도 신설했다. 앞으로 1차로형 회전교차로를 돌고 있던 차량과 진입하는 차량이 부딪친다면 진입차량이 80%, 회전차량이 20% 책임을 진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차량이 침범해 자전거를 친다면 100% 차량 과실이다.


앞서 가는 화물차 등에서 떨어진 적재물 때문에 발생한 사고의 과실비율도 달라진다. 적재물을 떨어뜨린 차량이 100% 책임을 져야 한다(뒤차가 안전거리를 유지하며 주행한 경우에만 적용). 기존에는 적재물을 떨어뜨린 차량에 60%, 뒤따라 오던 차량에 40% 과실을 물었다.

정체 중에 ‘급 진로변경’으로 발생한 사고도 차로를 변경하던 차에 100% 책임을 묻는다. 1차로에서 대기하던 차량이 직진차로인 2차로로 급하게 진로를 바꾸다 직진하던 차량의 측면과 부딪친 경우다. 충격 부위가 측면일 경우 직진차량이 예측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일방과실로 책정했다.

오토바이와 차량 간 사고에서 차의 과실비율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했던 기준도 바뀐다. 현행 기준은 오토바이 과실비율을 낮게 본다. 하지만 최근 법원에서는 오토바이의 무리한 진입으로 발생한 사고의 경우 오토바이 과실비율을 높게 판결하고 있다. 달라지는 과실비율 기준은 정체 도로에서 오른쪽 가장자리에 붙어 교차로에 진입한 오토바이와 맞은편 또는 측면에서 진입하던 차가 부딪힌 경우 오토바이 과실비율을 70%로 높였다. 기존에는 30%만 과실이 인정됐다. 교차로에서 녹색신호에 직진하는 차와 긴급 상황으로 ‘빨간불’에 직진하는 구급차가 부딪힌 경우 구급차의 과실비율은 40%로 책정된다.

금융위는 “피해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 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피해자에게도 일부 과실이 인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실비율 인정 기준은 손해보험협회 또는 분쟁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같은 보험사에 가입한 차량들 사이의 사고도 지난달 18일부터 과실비율 분쟁심의위원회를 통해 심의 의견을 받는 게 가능해졌다. 동일한 보험사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차량 간 사고는 2017년 기준 5만6000건에 이르지만 분쟁 조정이 불가능해 소송을 거쳐야만 했다. 자기차량손해 담보에 가입하지 않은 차량의 사고도 기존엔 소송을 통해야만 했으나 앞으로는 조정 대상에 포함된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