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수사는 총체적 위법 수사”… 유해용, 첫 재판서 검찰 비판

입력 2019-05-27 19:11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가담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 문건을 무단 반출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27일 자신의 첫 재판에서 검찰을 향해 “총체적으로 위법한 수사였다”고 비판했다. 유 전 수석연구관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1회 공판기일에서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7분여간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사법농단 사건이라고 표현하지만 실제 누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수사 절차가 적법하고 공정했는지 낱낱이 역사에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며 “검찰의 총체적 위법 수사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공소장 일본주의(一本主意) 위배, 영장 별건 압수수색, 언론을 활용한 피의사실 공표, 표적수사, 영장주의 위반을 조목조목 언급했다. 검찰 공소사실에 대해서도 “부정한 목적이나 별도의 지시에 따라 (문건을) 취급한 것이 아니다”며 “자연스럽게 외장하드를 그대로 소지한 채 퇴직한 것”이라고 부인했다.

유 전 수석연구관은 “몸소 겪어보고 나서야 수사 실상이 이런 줄 몰랐다는 것을 깨우쳤다”며 “우리 수사와 재판이 국가 품격에 맞게 변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검찰의 수사 관행을 비판했다. 앞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첫 재판에서 “사법농단은 검찰발 미세먼지가 만든 신기루”라며 검찰 수사가 무리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법관들이 심판 대상이 되자 검찰 수사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재판권을 갖고 검찰 수사의 적법성을 누구보다 엄격히 판단했어야 할 법관들이 자신의 일이 되고 나서야 검찰의 수사 관행을 지적하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유 전 수석연구관도 이날 “전현직 판사들이 남의 일일 때는 무덤덤하다가 자기 일이 되고서야 기본적 권리, 절차적 권리를 따진다는 언론과 국민의 질책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 같은 주장에 즉각 반발했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의 혐의가 드러났다”며 “중요 증거들을 고의로 인멸한 사실이 있어 수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유 전 수석연구관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대법원 수석·선임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하면서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의 검토보고서 및 의견서 등을 무단으로 반출한 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이를 파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