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럽 중도의 몰락… 구태의연한 한국 정당에 대한 경고

입력 2019-05-28 04:04
4억명에 가까운 유럽연합(EU) 유권자를 대변할 나흘간의 유럽의회 선거가 끝났다. 결과는 중도 보수와 중도 좌파가 주축을 이룬 전통 정당의 몰락이다. 중도 우파 성향의 유럽국민당(EPP) 그룹과 중도 좌파 성향의 사회당(S&D) 그룹은 제1, 2당의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현재보다 의석을 20% 잃을 것으로 예상됐다. 두 정치세력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해 새로운 연정 파트너를 찾아야 할 상황이다.

이들의 공백을 채울 정치세력은 반(反)난민 정책을 주장하는 극우·포퓰리스트 정당과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는 녹색당 그룹이다. 현재 유럽의회에서 3개 정치그룹으로 나뉜 극우·포퓰리스트 정당은 전체 유럽의회 의석 중 25%가량을 차지할 전망이다. 2014년부터 유럽 정치권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이들이 이제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고 봐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극우 성향의 국민연합(RN)이 출구조사 1위를 차지했고, 영국에서는 극우 성향 신생 브렉시트당이 1위를 할 가능성이 크다. 극우 정당들은 유럽의회 권한을 이용해 EU 난민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압박할 것이다. 친환경 성향 녹색당 진영인 ‘녹색·자유동맹(Greens/EFA)’ 그룹의 약진도 주목해야 한다. 유럽의회 연정 구성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이들은 기후변화 대응 조치에 대한 서면 약속 등을 연정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산업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무역정책에 대한 수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100년에서 150년의 전통을 가진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의 중도 보수, 중도 좌파 정당의 부진은 한국 정치권에도 시사하는 바 크다. 유권자들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노란 조끼 시위, 난민과 환경 문제 등 사회적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전통 정당들을 가차 없이 응징했다.

촛불 정국을 통해 집권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성장은 물론 분배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구체적인 대안과 설득력 있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유럽 정치권의 지각 변동은 한국 유권자들도 언제라도 다른 정치세력에 표를 몰아줄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