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 덕산고 1학년인 유진이는 2교시 수학 시간을 마치고 교실에서 나와 학교가 마련한 별도 교실로 이동했다. 점심 먹기 전 이뤄지는 3, 4교시는 기다리던 교육학 수업이다. 내신 성적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 꿈인 교사에 한발짝 더 다가가는 느낌에 뿌듯하다. 자리에 앉아 헤드셋을 쓰고 노트북 컴퓨터를 열자 선생님과 친구들이 모니터 속에서 웃으며 유진을 맞는다.
같은 시각 덕산고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자리한 충남 공주 한일고. 이 학교 1학년인 지우는 태권도 수업을 끝내고 노트북 모니터에서 유진이를 만났다. 교육학자나 교육행정가가 되고 싶은 지우도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두 차례 있는 교육학 수업을 기다린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다른 학교 학생들과 벌이는 토론이 흥미롭다. 이날 수업에선 교육계 이슈인 고교학점제가 다뤄졌다.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2025년 전면 도입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한일고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선 이 수업을 담당하는 박영철 선생님이 혼자 카메라 앞에서 손짓 발짓 해가며 수업을 하고 있다. 수업은 그의 움직임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입체적이다. 다양한 교육 자료가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동영상이 공유되면 교사가 설명하고 학생은 의견을 낸다. 찬반 투표도 즉석에서 진행됐다. 고교학점제의 2025년 전면 도입을 찬성하는 학생 얼굴에는 동그라미, 반대 학생에게는 엑스표가 그려지고, OX를 기준으로 모둠이 만들어지면 모둠별 토론과 전체 토론으로 이어졌다.
교사용 모니터에는 발언하는 학생 얼굴 밑으로 하늘색 바가 빛난다. 누가 활발히 토론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학생들의 의견은 구글 문서공유 프로그램으로 실시간 정리되며 교사의 피드백도 실시간 이뤄진다. 졸거나 딴짓 하는 학생이 있으면 교사 모니터에 자동으로 붉게 표시되는 기능이 시스템에 탑재돼 있는데 이 수업에서는 기능이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지난 21일 찾은 덕산고와 한일고의 온라인 공동 수업 모습이다. 두 학교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정규시간에 온라인 공동 수업을 편성했다. 1학기에는 처음으로 교육학 수업을 열었고, 2학기에는 심리학 수업이 예정돼 있다. 교육학 수업은 덕산고 11명, 한일고 4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교육부의 온라인 공동 수업 시스템인 ‘교실 온닷’을 활용하고 있다.
두 학교의 실험은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먼저 고교학점제 도입의 필요성이다. 고교 교육은 학생의 수업 선택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선택권을 극대화한 제도다. 학생 입장에서 평소 배우고 싶었거나 대학, 사회에 나가 유용할 법한 지식이 오가는 수업이라면 눈을 반짝이며 학교에 나갈 수 있다. 두 학교의 교육학 수업이 좋은 예다. 여기에 교사의 열정이 더해지면 교실 혁신은 구호에 그치지 않게 된다.
온라인 수업이 기존 수업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고교학점제 성패와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려면 지역·학교 격차 해소책이 선행돼야 한다. 예를 들어 화학자가 꿈인 학생들이 있다. 한 학생은 서울의 큰 학교에서 고급 화학 수업을 다양하게 듣는다. 그러나 농어촌 학교 학생은 언감생심이다. 가르쳐줄 교사도, 같이 수업받을 친구도 없다. 지역이나 학교에 따라 꿈이 차별받는다면 고교학점제 도입은 어려워진다.
교육부가 온라인 공동 수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교육부는 지난 3월 서울 등 시·도교육청 11곳에 스튜디오 22개를 설치했다. 내년 2월에는 시·도교육청 6곳에도 스튜디오 12개를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현장 반응은 호의적이다. 차덕환 덕산고 교장은 “희망 학생이 적거나 교사 수급이 어려운 소인수 심화과목들은 학교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저희(충남) 지역 학교에선 큰 고민거리다. 온라인 공동 수업이 제대로 운영된다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예산·공주=글·사진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