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아이들의 마지막 버팀목 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 ‘우리세상’

입력 2019-05-28 00:03 수정 2019-05-28 00:25

27일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 한 건물 3층, 낮부터 청소년들의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했다. 각자의 사정으로 집을 나와 갈 곳 없는 아이들이 잠시 머무는 서울시립 신림청소년쉼터 ‘우리세상’(소장 홍정수 성공회 신부)의 모습이다. 청소년들은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젓가락으로 콩을 집거나 탁구와 공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노는 순간만큼은 가족들에게서 떨어져 있다는 슬픔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홍정수 성공회 신부가 27일 신림청소년쉼터 ‘우리세상’에서 거리 청소년을 위해 설치한 탁구대에서 탁구 시범을 보이고 있다.

우리세상은 21년 동안 이곳을 지켜왔다. 가정의 불화 혹은 해체를 피해, 갈 곳 없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을 수 있는 버팀목이 됐다. 정원 20명에 최대 6개월을 머물 수 있는 이곳엔 홈페이지를 보고 찾아온 이들도 있고 경찰이나 친구의 손을 잡고 찾아온 이들도 있다.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사람은 6000여명. 그중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새로 이룬 뒤 음료수를 사 들고 방문하는 이도 꽤 많다.

A군(17)은 가정불화로 이곳을 찾아와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고 있었다. 홍정수 신부가 가게를 찾았을 때, 그는 사장에게 혼이 나고 있었다. 홍 신부는 모른 체하며 눈인사만 건넸다. 이튿날 A군은 쉼터 친구들에게 홍 신부가 자신의 가게를 찾아왔다고 자랑했다. 시간이 흘러 홍 신부를 전철역에서 다시 만난 A군은 달려가 그의 품에 꼭 안겼다. 소소한 사랑과 관심도 너무 감사했던 것이다.

쉼터 식구들이 함께 사진을 붙이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도 있다. 아픔을 친구들과 나누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다. B군(18)은 탁구를 잘 치는 소년이었다. 앞으로의 꿈을 묻자 “엄마 아빠와 행복하게 살던 어릴 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새엄마와의 불화로 5년 전 가출한 그의 꿈은 과거에 있었다.

가정이 깨어지면 아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이들이 시련을 이겨낼 수 있도록 보듬어 줄 기관과 어른이 필요하다.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으면 아이들은 건강한 가정의 엄마와 아빠가 될 수 있다.

송경용 성공회 신부가 1996년 서울시에 이 공간을 제안한 것은 이런 취지였다. 후임인 홍 신부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알아봐 주며 이들의 아픔을 들어준다. 서울시와 여성가족부는 이곳 운영비를 지원한다.

홍 신부는 ‘내면의 영성’으로 이곳을 운영한다. 이곳을 찾은 아이들 중에는 어른들과 함께 즐겁게 지내본 경험이 없는 이들이 많다. 이곳에 노래방과 탁구대, 편하게 책 읽을 공간 등 아이들이 즐거워할 공간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홍 신부는 “아이들이 가정과 사회로 건강히 복귀하도록 묵묵히 뒤에서 돕는 게 우리 역할”이라며 “이들을 따뜻이 보살피며 사랑의 감정을 전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고 흐뭇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동우 기자 lov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