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념이 실력 아니듯 투쟁도 실력일 수 없다

입력 2019-05-28 04:02
이번엔 정책투쟁 선언한 황교안 대표
국회 문 닫아걸고 논하는 정책은 공허
靑도 형식에 집착 말고 대화 나서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27일 기자회견은 모순되는 주장이 여러 번 충돌했다. 18일간 벌여온 장외 민생투쟁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황 대표는 “정책 전환 없이 경제와 민생의 절망을 풀어낼 길이 없다”면서 이제 정책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분야별로 입법과 예산까지 꼼꼼하게 세부계획을 세워 실천해 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정작 그 일을 할 수 있는 국회에는 복귀할 수 없다고 했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려면 입법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면서도 보이콧 상태인 국회를 재가동하는 문제에선 여당의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라는 기존 조건만 되풀이했다. 입법 노력이 없는 정책은 공허하고, 국회가 아닌 곳에서의 정책투쟁은 또 다른 장외투쟁일 뿐이다.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바로잡고 근로시간 단축 대책도 하루속히 실천하겠다”는 대목에서 공허함은 정점에 달했다. 최저임금과 주52시간 보완 입법은 패스트트랙 사태가 벌어지기 훨씬 전에 이미 국회로 공이 넘어와 있었다. 두 사안에 대한 민생의 아우성을 뻔히 들으면서 미루고 미루다 이제 와서 실천하겠다고 하니, 그것도 국회는 계속 닫아걸은 채 “하루속히” 하겠다고 하니 진정성이 느껴질 리 없다.

황 대표는 취임 이후 줄곧 투쟁의 정치를 해 왔다. 여권의 정책은 이념 정책이며 이념은 실력이 아니라고 비판하는데, 투쟁도 실력이 될 수 없다. 민생에 성과물로 나타나지 않는 한 이념이니 투쟁이니 하는 것은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 신인으로 거대 야당을 이끄는 상황을 감안하면 그간의 행보는 이해할 수 있다. 입지는 다졌고 그걸로 됐다. 황 대표도 이제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실력을 보여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와 국회의 복원이고 제1야당 대표가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강효상 의원이 연루된 외교 기밀 유출 문제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의 스탠스를 고스란히 수용한 것은 그래서 더욱 아쉽다. 보수 진영에서조차 거센 비판이 나오는 사안을 대권 주자라는 그가 정치적 대결의 시각에서만 바라봤다. 정책에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처럼 황 대표에게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공허함과 아쉬움이 남는 기자회견 중에는 여권이 귀담아들어야 할 대목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고 이를 대통령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만나자는 사람 못 만날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 간의 외교도 아닌데 양자회담이니 다자회담이니 형식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얼굴을 붉힐지언정 만나고 또 만나서 얽히고설킨 한국 정치의 실타래를 풀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