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훈]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 타당하다

입력 2019-05-28 04:01

최근 경찰위원회는 경찰청에서 마련한 예규 상정안인 ‘경찰 물리력 행사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규칙 제정안’을 심의한 끝에 향후 6개월간의 경과 기간을 두고 2019년 11월부터 전국 경찰관서에서 전면 시행키로 의결했다. 경찰 물리력 사용에 관한 우리나라와 미국 법원의 판례, 관련 국내외 연구, 외국 주요 경찰관서에서 운영되고 있는 물리력 사용 준칙을 비교 검토해 마련됐다.

이번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에는 객관적 합리성의 원칙, 대상자 행위와 물리력 간 상응의 원칙, 위해감소 노력 우선의 원칙 등 경찰 물리력 행사 3대 기본 원칙이 제시돼 있다. 경찰 물리력 사용 대상자가 경찰관 또는 무고한 제3자에 대해 가하는 위해 정도에 따라 경찰관이 사용할 수 있는 물리력의 수준을 보다 자세한 도표로 설정한 ‘경찰 물리력 사용 연속체’도 담겨 있다.

경찰청의 물리력 행사 기준에 대해 또 다른 규정을 만들어 복잡다양하고 급박한 일선 치안현장의 물리력 사용 상황에서 발휘돼야 하는 개별 경찰관의 재량권을 축소해 결국 경찰관의 법적 책임 가능성만 증가시킨다는 일부 경찰관들의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번 물리력 행사 기준에 포함된 객관적 합리성의 원칙에 따라 경찰 물리력 사용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 개별 물리력 사용에 대해 획일적, 기계적인 사후 판단이 아닌 객관적으로 합리적인 현장 경찰관의 관점에서 사용된 물리력의 적절성을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경찰관의 재량권 행사를 축소하는 경우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도 그동안 명확한 규정 없이 행사된 경찰 물리력이 현행법 규정과 법원 판례에 따라 엄격히 통제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라 생각한다.

경찰관의 물리력 사용 시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원칙, 물리력 사용의 정도, 각 물리력 수단의 사용 한계 및 유의사항을 이번 물리력 행사 기준으로 규정함으로써 국민과 경찰관의 생명·신체를 보호하고 인권을 보장하며 경찰 법 집행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경찰청의 노력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경찰관의 합리적인 물리력 사용은 물리력 사용 기준과 같은 규정, 문서만으로는 확보될 수 없다. 그러므로 향후 경찰청은 실질적으로 합리적 물리력 사용을 담보할 수 있는 혁신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198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경찰 물리력 적절성 판단 기준과 우리나라 대법원의 판례를 종합적으로 분석, 도입한 경찰 물리력 행사 기본원칙은 개별 경찰관이 권총뿐만 아니라 전자충격기, 호신용 최루액 분사기, 경찰봉 등 다양한 비살상 경찰장비를 모두 휴대하고, 이들 장비와 더불어 경찰관의 신체적 물리력과 언어적 통제 방법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는 전제요건이 충족된 경우에 한해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지구대 파출소 경찰관 1인이 권총 또는 전자충격기 중 하나만의 장비를 휴대하는 현행 휴대 무기체계, 15m 고정 표적지를 활용한 권총 사격 위주의 현행 물리력 사용 교육, 훈련제도는 이번 물리력 행사 기준 제정을 계기로 반드시 대대적인 손질이 필요하다. 현재 소속 경찰관의 물리력 사용 한계와 방법을 직접 가르칠 만한 능력이 있는 경찰서장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지 의문이다.

올바른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 설정과 더불어 내실 있는 교육·훈련이 이뤄질 수 있도록 서울 서대문경찰서 충정로지구대장과 같이 일선 외근경찰관의 현장 대응력 향상에 노력해 온 정예 경찰관들을 미국, 유럽의 선진 경찰관서로 파견, 물리력 사용 훈련 과정을 이수토록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우리나라 치안 현실에 알맞은 교육, 훈련제도부터 마련하는 것이 물리력 행사 기준 설정보다 선행돼야만 한다.

이러한 제반요건이 완비되고 일선 경찰관에 대한 철저한 교육·훈련이 선행된 이후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이 시행된다면 경찰 물리력 사용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는 시민과 경찰관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무쪼록 어려운 과정 끝에 마련된 이번 경찰 물리력 행사 기준이 차질없이 시행될 수 있도록 경찰청의 신속하고 책임 있는 후속 조치를 촉구한다.

이훈(조선대 교수·경찰행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