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도, 입체도 아닌… 새로운 장르 확장 실험

입력 2019-05-27 19:20

전시장 벽의 끝부분에 설치된 평평한 검은 원이 잘려 있다. 원의 나머지 부분은 가느다란 철사를 허공에 둘렀다. 이 작품 ‘인필(Infill·빈 공간 채우기·사진)’은 전체적으로는 원의 형태를 띠었으나 이것은 평면도, 입체도 아닌 새로운 무엇이다.

홍익대 교수인 홍정욱(44)이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리안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고 있다. 전시 제목은 ‘플라노(plano-)’이다. 영어로 평면을 뜻하는 ‘플레인(plane)’의 연결형으로, 그 뒤에 다양한 수식어와 조합해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 이를테면 ‘평면구조적(plano-structural)’ 같은 단어가 그렇다.

전시 제목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요약해준다. 그는 회화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캔버스의 형태가 왜 꼭 사각이어야만 하는지, 또 회화는 왜 항상 벽에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해왔다. 그리하여 회화의 ‘평면성’을 유지하면서도 그 경계를 확장하는 형태적 실험을 지속해 왔다.

‘인필’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회화의 개념을 3차원 공간에서 재현한 일종의 ‘트롱프뢰유(trompe l’oeil·눈속임)’ 미술이기도 하다.

캔버스도 사각형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진다. 삼각형 오각형 팔각형 원형 등 다양해 그 자체로서 조형미를 드러낸다. 작품 ‘얼티어리어(ulterior·이면의)’는 육면체의 내부를 3개의 마름모꼴로 나누고 면마다 음영을 넣었기에 멀리서 보면 입방체처럼 보인다.

‘화이트큐브(사각의 흰 벽이 있는 갤러리)’ 전시 문법에도 도전한다. 갤러리에서는 벽 중앙에 작품을 전시하지만, 그는 바닥이나 외진 구석에 작품을 걸거나 두었다. 한마디로 전통에 도전하는 작업이다.

이런 노력이 평가받아 2009년 미국 블룸버그재단이 주는 뉴컨템퍼러리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상은 유망 신진작가에게 주는 것으로, 데미안 허스트와 데이비드 호크니 등 현대미술 대가들이 받은 바 있다. 작가는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영국 런던대학교 슬레이드 대학원에서 유학했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