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영일] 극지시대, 쇄빙선 추가 건조해야

입력 2019-05-28 03:59 수정 2019-05-30 14:0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35년까지 13척의 쇄빙선을 보유할 계획이라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지난 2월 쇄빙선 건조를 위해 6억55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차기 쇄빙선 건조 예산으로 2000만 달러 투자 계획에 서명했다. 북극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이웃나라들도 쇄빙선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기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극지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접근이 쉽지 않다. 비행기로는 착륙과 연료 보급이 어렵고, 육로나 바닷길은 얼음이 가로막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있다. 대한민국 극지 연구를 아라온호 전과 후로 나눌 만큼 쇄빙연구선의 존재감은 컸다. 기지 주변에서 진행되던 연구 영역을 넓혔고, 캐나다 경제수역 안에서 해저 탐사를 수행할 정도로 국제적 위상도 높였다. 북극권 국가가 아닌 우리나라가 북극권 국가들의 북극해 수산자원 관리 기초 연구에 참여하게 된 것이 아라온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간 300일 이상을 운항하는 아라온호는 아쉽게도 10년째 국내 최초, 국내 유일의 쇄빙연구선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극지 시대를 준비하는 나라들과 비교하면 수적으로나 활동 범위로나 많이 부족하다.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최첨단이었던 성능도 한계를 드러냈다. 쇄빙선이 얼음을 깨는 능력은 배의 활동 범위와 직결된다. 현재 아라온호의 쇄빙 능력으로 여름을 제외한 계절에 북극을 항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북극은 얼음 면적이 40% 줄어들 만큼 따뜻해졌다. 이는 우리나라에 예측하기 힘든 폭염과 한파를 불러온다. 반면 북극 얼음이 녹으면서 드러난 새로운 바닷길, 북극항로는 동북아시아에서 유럽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열흘이나 단축했다. 극지의 변화가 기회인 셈이다. 하지만 제때 수단을 마련하지 못하다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지난 4월 국회에서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공청회에선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은 물론 조선업계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신규 쇄빙선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아라온호를 능가하는 차세대 쇄빙연구선 건조는 다가오는 극지 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다. 아라온호와 차세대 쇄빙연구선이 함께 당당히 얼음을 깨며 연구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박영일(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