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공무원의 한·미 정상 통화 내용 유출 의혹이 불거지면서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여권에서는 이번 사건을 집권 3년차 문재인정부에서 공무원 기강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검찰의 공개적 반발,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논란, 지난해 말 불거진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공무원의 내부 문건 폭로 등 공무원이 정부·여당에 맞서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출 논란에 연루된 외교관 K씨와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에 대해 강경 대응 입장을 밝혔다.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2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에서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며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연·지연·혈연이 자기 직책에 걸맞은 윤리의식을 흐트러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박찬대 원내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강 의원의 외교기밀 누설은 명백한 이적행위”라며 “강 의원이 국격을 실추시킨 잘못을 스스로에게 물어 자진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번 사건을 특정 공무원의 일탈로 규정하면서 공직사회 전반과 대립각을 세우지는 않는 분위기다. 한 의원은 “개인적 일탈이며 강 의원과 사적인 관계로 벌어진 일”이라고 했고, 다른 의원도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 범죄행위로, 그것을 자꾸 레임덕으로 연결시키려 하는데 그건 아니다”고 말했다.
개인 일탈을 강조한 것은 정부·여당이 나서서 공직사회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밝힐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지난 10일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토부 공무원들을 두고 “관료들이 말을 안 듣는다. (정부 출범) 2주년이 아니고 4주년 같다”고 한 밀담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됐었다. 야당에선 “레임덕을 인정하는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다만 여당 내에선 기밀 유출에 대해 엄중 징계로 공무원사회에 경고 신호를 분명히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 의원은 “문재인정부가 과거 권위주의적 정부와 다르기 때문에 관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며 “과거보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기강해이로 이어지지 않도록 외교부 건은 강력하게 조치해 공직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 내부에선 일부 관료들의 보수성이 정부의 개혁 동력을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역대 어느 정부나 집권 3년차가 되면 공무원 장악력이 떨어지고 권력 누수가 시작되는 ‘3년차 증후군’에 시달렸다. 문재인정부에서도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과 일선 검사들이 수사권 조정 관련 법안을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여당이 어렵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린 법안에 대해 검찰총장이 반기를 들면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말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 폭로,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의 적자국채 발행 관련 폭로로 정부가 곤욕을 치렀다.
집권 3년차 증후군을 막으려는 정부는 공직기강 다잡기에 나섰다. 관가에 따르면 최근 공직기강협의체가 정부세종청사 실국장급을 대상으로 서울 출장 경위 확인에 들어갔다. 서울 왕래가 잦은 고위 공무원들의 출장 목적 등을 조사하면서 일부의 음주운전과 유흥주점 출입 등 일탈 행위가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임성수 김판 신재희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