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 이젠 환율전쟁까지… 수출 불확실성 더욱 커졌다

입력 2019-05-27 04:05
한국도 ‘유탄’ 맞을 가능성… 갈수록 악화하는 대내외 경제 환경 냉정하게 보고 근거없는 낙관론 벗어나야

미국 상무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국가들에 상계관세를 부과할 방침을 밝혔다. 상계관세는 보조금으로 가격 경쟁력을 높인 수입품이 자국 산업에 피해를 줬다고 판단될 때 부과하는 관세다. 앞으로 특정 국가가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도 수출 확대를 위한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간주해 보복 관세를 매기겠다는 의미다. 이번 조치는 일차적으로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기술전쟁을 넘어 환율전쟁으로까지 확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외신들은 대미 주요 수출국인 한국 일본 등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한국 일본 독일 스위스 인도 등도 고율 관세 대상에 포함될 위험이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최근 원화 가치가 위안화에 동조해 낙폭을 키운 만큼 한국 상품도 미국의 ‘환율 과녁’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

애초 봉합되리라 예상됐던 미·중 무역갈등이 확전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이미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이달 20일까지 수출이 12%나 감소해 6개월 연속 수출 감소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26.8%)과 미국(12.1%)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에 가깝고, 특히 대중 수출품 가운데 중간재 비중이 79%에 이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글로벌 무역갈등 등을 위험 요인으로 꼽으며 올해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기존보다 0.2% 포인트 하향, 3.3%로 제시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번지면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은 추가로 0.2~0.8% 포인트 더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 수출엔 또 하나의 직격탄이다.

무엇보다 소득주도성장 실패에 따른 내수 부진이 진행 중인 가운데 최대 성장 엔진인 수출이 위축되고 있는 게 문제다. 청와대와 정부의 낙관론은 ‘상저하고’(상반기에 경기가 부진하지만 하반기에는 크게 호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지만 미·중 무역갈등 격화로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 상저하고론이 반도체 등 주요 수출 품목이 하반기에는 반등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근거 없는 낙관론을 읊조리고 있는 사이 대내외 경제 환경은 갈수록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이번 조치는 미·중 무역전쟁은 그 본질이 체제 경쟁이자 패권 경쟁이어서 장기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맞는다는 걸 다시 보여준다. 정부는 현실 인식부터 냉정하게 다시 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