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화웨이 제재가 단기적으로는 우리 기업에 반사이익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국의 제재에 동참할 경우 중국이 ‘제2의 사드 보복’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싱가포르 법인은 이달 말까지 화웨이 스마트폰을 반납하면 보상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화웨이가 구글과 협업이 중단되면서 주춤거리는 틈새를 파고들어 점유율을 올리려는 것이다. 화웨이 메이트 20 프로는 755싱가포르달러(약 65만원), P20은 445싱가포르달러(약 38만원)를 보상해준다.
구글 등 주요 IT 기업이 화웨이에 등을 돌리면서 기존에 출시된 화웨이 스마트폰 가치는 급락하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영국 중고 스마트폰 거래 사이트에서 갤럭시S10+가 510파운드(약 77만원)에 거래되지만, 화웨이 P30 프로는 100파운드밖에 안 된다고 전했다. P30 프로 출고가는 900파운드로 화웨이 제재 이후 가치가 90%가량 급락했다.
올해 하반기부터 5G폰과 폴더블폰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화웨이가 구글 등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지위는 더욱 공고해질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화웨이의 부진이 삼성전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화웨이는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강력한 경쟁자이지만 동시에 반도체 사업에서 주요 고객이다. 삼성전자 2018년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화웨이는 애플, 베스트 바이, 도이치 텔레콤, 버라이즌 등과 더불어 삼성전자의 5대 매출처였다. 5대 매출처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달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본격화하지 못한 상황이라 D램, 낸드플래시 등을 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화웨이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퇴출된다면 삼성전자도 반도체 부문에서 상당한 수준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해진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중국 매출은 54조7796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32%를 차지했다. SK하이닉스도 중국 매출 비중이 전체의 39%가량이다.
미국이 화웨이 제재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하는 상황이라 과거 사드 보복과 같은 한국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에서 애플 아이폰 판매가 크게 줄어든 것처럼 한국산 제품 전반에 걸친 부정적 분위기가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우려 탓에 지난주(20~24일)까지 화장품 등 중국 소비 관련 주요 17개 종목 주가가 평균 8.1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가총액으로는 2조5848억원가량 감소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체할 수 없는 반도체 등은 직접 불매운동을 하지 않겠지만 소비재는 언제든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나라 기업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