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를 질병으로 분류하자 국내 게임업계는 강력한 유감을 표했다. 충분한 연구와 데이터 등 과학적 근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너무 성급한 판단이라는 주장이다.
국내 게임학회·협회·기관 등 88개 단체로 이뤄진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준비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WHO의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질병코드 지정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31조에 명시된 문화적, 예술적 생활에 완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아동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이번 WHO 결정으로 게임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대되고, 정부의 관련 규제가 강화될 것을 우려했다. 공대위는 “4차 산업혁명 시대 중요한 게임과 콘텐츠 산업의 뿌리가 흔들리는 상황”이라며 “근거가 없어 계류되거나 인준받지 못했던 게임을 규제하는 다양한 법안이 다시 발의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임업체들도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26일 “WHO의 진단기준은 중독의 핵심적인 증상인 내성, 금단증상 등을 제거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게임장애를 설명한다”며 “게임이 질환을 일으킨다는 인과가 규정되지도 않았고 예상되는 부작용 등에 관한 연구도 없다”고 비판했다. 다른 게임업체 관계자도 “게임장애 질병코드 지정은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주관적인 시도”라며 “앞으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심화되고 이용자는 물론 종사자들이 자괴감을 참담하게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범죄의 원인을 무작정 게임으로 돌릴 우려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원인이 게임에 의한 것인지 가정형편, 교육환경 때문인지 구분하기는 어렵다”면서 “일방적으로 게임에 질병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덕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에 제출한 ‘게임 과몰입 정책변화에 따른 게임산업의 경제적 효과 추정 보고서’에서 게임장애가 질병코드화되면 국내 게임시장 매출 축소 규모가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팀이 게임 제작배급업체 147개에 직접 설문한 결과 국내 매출 손실은 2023년 1조819억원, 2024년 2조1259억원, 2025년 3조1376억원, 해외 매출 손실은 2023년 6426억원, 2024년 1조2762억원, 2025년 1조92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