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나이테는 세월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세월호 가족들은 이 나이테의 결을 살려 원목가구를 만들고 ‘4·16 잊지 않겠습니다’란 글귀를 새겨 넣는다. 세월호 참사가 한국사회에 일깨운 생명 평화 안전이란 가치를 일상에서 최우선으로 하자는 다짐이다.
한국교회와 함께한 4·16희망목공협동조합이 25일 경기도 안산 단원구 와동 꽃빛공원 입구 근처에서 ‘4·16목공소’ 개소식을 열었다. 4·16희망목공협동조합은 ‘파파 스머프’ 별명의 미지아빠 유해종씨, 민정아빠 김병준씨, 수연아빠 이재복씨, 시찬아빠 박요섭씨, 수인엄마 김명임씨, 동수엄마 김도현씨, 민수엄마 여종은씨 등 세월호 유족 7명과 안홍택(용인 고기교회) 박인환(안산 화정교회) 목사 등 목회자 2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돼 있다. 세월호 엄마 아빠들이 목공 활동을 통해 심리적·경제적 안정을 찾고, 정성껏 제작한 작품으로 생명 평화 안전이란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전하려는 사회적 기업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이홍정 총무가 참석해 인사말을 했다. 이 총무는 참사 이후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미수습자 이름을 불러가며 유족과 함께 울부짖었던 기도회 시간을 떠올렸다. 그는 “세월호 가족들이 고통을 견디고 세상으로 걸어 나오려는 시도에 아픈 맘으로 감사를 드린다”면서 “목수였던 예수님의 손길을 느끼면서 먼 길을 동행하기 위해 같이 신발 끈을 동여맬 것”이라고 말했다.
4·16목공소 설립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과 기독교대한감리회 교단이 목공 기계 설치를 지원하며 함께했다. 개소식에선 두 교단에 대한 감사패 증정이 있었다. 예장통합 사무총장인 변창배 목사는 “저희가 내민 작은 손길을 잡아주셔서 감사하다”며 거꾸로 유족에게 감사를 표했다.
협동조합 이사장인 미지아빠 유씨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으로 좌절의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교회가 함께한 목공방이 큰 위로가 됐다”면서 “목공방을 통해 희망을 찾았고 주변의 사람들도 돌아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목공 작업으로 왼쪽 손을 다친 유씨는 이날 깁스를 하고 개소식에 참석했다. 기독교인이었지만 참사 직후 유족을 폄훼하는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에 격분해 교회를 나가지 않았던 그는 “아내와 함께 새로이 출석할 교회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연아빠 이씨는 참사를 통해 하나뿐인 아이를 잃고 25년간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이씨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아서 친구도 친척도 옛 직장 동료도 얼굴 맞대기가 어려웠다”고 회상했다. 사무직으로 키보드만 두들기다 처음으로 목공 기계를 잡은 그였지만 “공구를 잡으면 부정적 생각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다른 유족도 나무를 만지면서 안정제나 수면제 복용을 줄여가고 있다.
2015년부터 세월호 가족들에게 목공을 지도한 안 목사는 침대 화장대 책상 옷장 식탁 장식장 등으로 가득한 전시실을 안내하며 “모든 작품이 2개월여에 걸쳐 만든 것”이라고 소개했다. 천연 원목이 주는 따듯한 느낌을 살려 자연 그대로의 짜맞춤 방식으로 제작했는데 생산성도 높았다. 안 목사는 “4·16 정신이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던 데서 나아가 생활 속 생명·평화 운동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안산=글·사진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