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손 방치하면 갈라지고 찢어지고… 작업 전 꼭 장갑끼세요

입력 2019-05-27 19:30
사진=프리픽 제공

물건을 들어올리고 문을 여닫는 등 일상에서 손을 대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그러한 손이 갈라짐, 물집, 심한 가려움, 통증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말로 다 하지 못할 것이다.

흔히 주부들이 겪는다고 해서 ‘주부 습진’으로 가볍게 여겨지는 ‘만성 중증 손 습진’. 실제로는 신체·정신적 고통은 물론 사회적 편견으로 이중고를 겪는 심각한 질환으로, 올바른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고려대 안산병원 등 19개 대학병원 공동 연구팀이 2016년 대한피부과학회지에 발표한 연구논문을 보면 손에 물 닿는 일이 많은 의료인과 주부, 미용사 등 특정 직업군에서 만성 손 습진을 빈번하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2013년 한햇동안 국내 24개 의료기관을 찾은 913명의 손 습진 환자를 직업군별로 분석했더니 의사·간호사 등 의료인(22.9%)이 가장 많았고 주부(19.5%) 학생(15.3%) 사무직 노동자(14%) 공장 노동자(5.9%) 교사(3.7%) 미용사(3.1%) 요리사(3.1%) 농부(3.1%) 청소부(0.8%) 정원사(0.7%) 기타 및 무응답(7.9%) 순이었다.

실제 인천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김모(38)씨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손바닥이 갈라지고 찢어지는 증상을 겪기 시작했다. 직업상 물로 손을 자주 씻고 알코올솜을 만지는 등 항상 손이 습한 환경에 노출된 탓이 컸다. 그녀는 “간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손 습진을 앓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일을 그만 두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귀띔했다.

20년째 이발소를 운영 중인 이모(50)씨 역시 10년 전부터 손이 두꺼워지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손님 이발은 물론 면도, 염색 등의 일을 맨 손으로 직접 해 왔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연고를 바르면 증상이 나아졌으나 몇 년 전부터는 연고를 써도 잘 듣지 않아 일을 그만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이 처럼 손 습진은 가정이나 일터에서 물이나 세제, 소독약 같은 자극적인 성분에 자주 노출될 경우 쉽게 걸릴 수 있다. 이런 자극제로 인해 손의 피부 보호막이 파괴되고 건조해지면서 증상이 나타난다. 더욱이 만성 중증 손 습진은 메마른 손바닥을 연상시킬 정도로 손이 갈라지고 찢어지는 등 심각한 증상으로, 환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 문을 열거나 뜨거운 음료를 드는 등 기본적인 활동에서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이탈리아의 한 연구에 따르면 만성 손 습진 환자는 이런 일상의 제약을 평균 6년 이상 경험하는 걸로 나타났다. 장기간 고통으로 생활이 어려워지다 보니 환자 2명 가운데 1명꼴로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겪는다는 보고도 있다.

스웨덴 연구진이 만성 중증 손 습진 환자 1238명을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은 주변으로부터 전염병으로 의심받는다고 답했다. 이처럼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고통스러운 채로 삶을 버텨나가고 있으며 사회적 편견에도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면 손 습진에 걸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또 만성화된 중증의 손 습진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과각화증(피부 각질이 일어나고 두꺼워지는 현상), 홍반(피부가 붉어짐), 태선화(피부가 가죽같이 두꺼워진 상태), 인설(피부에서 하얗게 떨어지는 부스러기), 물집, 갈라짐 등 심각한 피부 증상의 범위가 손 표면의 30% 이상에서 나타나고, 이런 중증이 3개월 넘게 지속되거나 1년 안에 두 번 이상 재발할 때 만성 중증 손 습진으로 진단된다. 따라서 이런 증상이 손에 오래 나타나거나 자꾸 재발한다면 의심해 봐야 한다.

전세계적으로 인구 10명 가운데 1명 꼴로 손 습진을 앓고 있으며 이들의 약 5~7%가 만성 중증 질환자로 추정된다. 우리나라에선 손 습진에 대한 별도의 질병 코드가 설정돼 있지 않아 공식적인 국내 유병률 확인이 어려운 실정이다.

손 습진을 예방하려면 물 묻힐 일이 많은 환경에서 일할 경우 장갑을 반드시 끼는 것이 좋다. 손을 씻을 때는 비누 성분이 남지 않도록 깨끗이 씻어낸 뒤 빠르게 손을 말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전에는 보습 기능이 좋은 보습제를 사용하고 일 할 때에도 가벼운 느낌의 보습제를 틈틈이 발라 주는 것이 권장된다. 보습제를 바를 때는 손가락 틈이나 손톱 주변 등 손 구석구석 발라줘야 한다.

만성 중증 손 습진에 걸려 치료가 필요할 경우엔 우선 스테로이드 연고가 쓰인다. 하지만 스테로이드제가 잘 듣지 않기도 한다. 만성 중증 손 습진 환자 163명을 대상으로 한 이탈리아 연구에 따르면 10명 가운데 6명(62.6%)은 강력한 스테로이드 치료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럴 땐 빠르게 치료법을 바꾸는 게 좋다. 스테로이드제를 한 달 이상 써 봤는데도 차도가 없다면 지체하지 말고 전문의 상담을 통해 먹는 약 등 다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만성 중증 손 습진 환자에 적응증을 갖고 증상 감소 효과가 뚜렷한 ‘알리트레티노인’ 성분의 먹는 약(알리톡) 사용이 가능하다. 예전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 있는 셈이다. 유럽접촉피부염학회 가이드라인은 1차 치료인 스테로이드제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먹는 약을 2차 치료제로 쓰도록 권고하고 있다. 복용법에 맞춰 중도에 중단하지 않고 3~6개월 꾸준히 치료하는 것이 병의 재발을 막고 증상 호전에 도움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먹는 만성 손 습진 치료제는 2013년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고 국내에도 들어와 있으며 2015년 11월부터 건강보험도 적용받고 있다.

인천 휴먼피부과병원 홍원규 원장은 27일 “만성 중증 손 습진의 경우 환자들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면 사회 생활에 지장을 느끼거나 우울증 등 정신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증상에 시달릴 수 있다”면서 “보습이나 연고 등 일반 치료가 잘 듣지 않는다면 먹는 약 등 새 치료법을 초기에 사용해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무엇보다 인터넷 등의 부정확한 정보에 의지하기 보다 피부과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