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인권에 헌신한 노 전 대통령 생각하며 초상화 그렸다”

입력 2019-05-23 18:39 수정 2019-05-23 22:10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녀 서은양이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할아버지 묘역을 참배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팔짱을 끼고 있다. 왼쪽은 서은양의 아버지 건호씨. 김해=이병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유가족에게 자신이 직접 그린 노 전 대통령 초상화를 전달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그릴 때 인권에 헌신하신 노 전 대통령을 생각했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시 전 대통령께서 노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그 자체가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보여주는 아주 상징적인 일”이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이곳에 오기 전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씨, 세 명의 손자 손녀를 만나 뵙고 환담했다”며 “가족과 국가를 진심으로 사랑하신 분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자리를 방문했다고 전했다”고 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초상화에 대해 “친절하고 따뜻한 노 전 대통령을 생각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의 기본권을 존중하신 분을 그렸다”며 “한국 인권에 대한 그분의 비전이 국경을 넘어 국외에까지 전달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설명했다.

생전의 노 전 대통령은 자주 서은양과 함께 자전거를 탔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자신의 재임 당시 노 전 대통령과 논의했던 한·미동맹 구상과 양국 관계도 설명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미국은 모든 한국인이 평화롭게 거주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며,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기본권과 자유가 보장되는 통일한국의 꿈을 지지한다”며 “자신의 목소리를 용기있게 내는 강력한 지도자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목소리를 내는 대상은 미국의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며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모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며 반미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던 점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은 저서 ‘최고의 영예’에서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의하듯 말하는 등 종종 반미적인 모습을 보인 노 전 대통령을 이해하긴 참 힘들었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북핵 문제 해법을 두고도 갈등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부시 전 대통령은 “저희는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한·미동맹의 중요성과 공유된 가치보다 우선하는 차이는 아니었다”며 “저는 노 전 대통령을 그릴 때 아주 겸손한 분을 그렸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와 가족, 국가, 그리고 공동체였다”고 강조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사를 마친 후 건호씨,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이 잠든 너럭바위를 참배했다.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외국 정상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 묘역 참배 후 베트남으로 출국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추도식에 앞서 청와대 상춘재에서 문 대통령을 예방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그린 초상화는 유족들에게 그보다 더 따뜻한 위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고, 부시 전 대통령은 “그림이 노 전 대통령을 닮았기를 바란다”고 웃으며 화답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저는 좋은 기억이 많다”며 “저희 부부와 노 전 대통령 부부만 단독으로 오찬을 했는데 일이 아닌 가족 이야기를 나눴다. 우정을 돈독하게 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께서는 ‘부시 대통령과 대화를 하면 소탈하고 진솔한 면이 많다’고 평가했었다”고 전했다.

강준구 기자, 김해=신재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