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선 당연한데, 국내 드라마 시장에선 찾기 어려웠던 제도가 있다. ‘시즌제’다. 그러나 최근 시즌제 드라마가 잇따라 전파를 타면서 정착 가능성도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들이 많다.
해외에선 ‘왕좌의 게임’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은 시즌제 드라마가 일찍이 안착했다. 자동차 등 주요 산업의 광고 시즌에 맞춰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정착된 제도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는 케이블, 종편 채널에서 주로 등장했다. 지난 4월 열일곱 번째 시즌을 마무리한 ‘막돼먹은 영애씨’(tvN)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더 가속화되는 모양새다. OCN은 이달에만 시즌제 작품 2개를 연달아 내보냈다. ‘구해줘2’와 ‘보이스3’다. ‘구해줘’는 지난 시즌에서 사이비 종교를 추적하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 사랑받았다.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보이스는 국제 범죄 카르텔에 맞서는 112 신고센터 대원들의 얘기를 그린다.
400억가량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아스달 연대기’(tvN)도 후속편이 이어질 확률이 높다. tvN 관계자는 “확정된 건 없지만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기획된 드라마”라고 했다.
지상파에서도 같은 열망이 감지된다. ‘동네변호사 조들호’(KBS2) 시즌2가 선보인 데 이어, 법의학자와 검사들의 공조수사를 그린 ‘검법남녀’ 두 번째 시즌이 방송을 앞두고 있다.
시즌제는 검증된 콘텐츠에 기초해 인기와 수익을 안정적으로 담보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국내 제작진의 흥미를 끌어왔다. ‘구해줘’ ‘보이스’의 전 시즌을 담당하는 스튜디오드래곤 이찬호 CP는 “시청자 팬덤을 만들어 드라마 브랜드 확보를 꾀할 수 있다는 장점과 동시에 전작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숙제가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콘텐츠의 질적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시즌제는 소재 고갈에 시달리지 않고 새 이야기를 지속해 선보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을 뜻한다. 제작진과 시청자의 피로도를 함께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정착이 어려웠던 건 오랜 시간 굳어진 시청 패턴 때문이었다. 미니시리즈나 일일드라마 형식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 스토리를 끊어가는 시즌제는 중도 이탈을 부추길 위험성이 컸다. 서사를 일단 마무리 짓고, 인기가 있을 경우 이후 스토리를 덧붙여 다음 시즌을 만들어내는 ‘한국형 시즌제’가 생겨났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외 드라마를 유통하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 대중화의 흐름을 타고 시즌제 제작 열풍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들이 있다. 스타 배우들의 일정을 조율하기 어려울뿐더러, 집단 작가체제가 일반화된 해외와 달리 1인 작가 체제나 작품에 PD가 배정되는 기존 제작 방식으로는 시즌 간 고른 완성도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 중 하나다.
따라서 제작 환경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 평론가는 “콘텐츠에 따라 시즌제와 비시즌제가 적절히 병행될 수 있어야 한다”며 “케이블에서 제작진과 배우들 간 향후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틀이 생기는 추세다. 그게 없이 ‘성공하면 다음 시즌을 제작한다’는 방식은 콘텐츠 질을 떨어뜨려 되레 독이 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