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의 말을 옮겨본다. “그의 글과 삶에서 ‘문중유애(文中有愛), 애중유문(愛中有文)’이라는 표현을 떠올렸다. 글마다 사랑이 있고, 사랑하는 마음속에 글이 있었다.” 신간 ‘외롭고 쓸쓸한 사람 가운데’는 ‘사유하는 공학자’로 불리는 대만 학자 리자퉁의 글 28편을 모은 것이다. 산문도 있고 소설도 있다. 대부분은 산문이나 소설의 중간쯤에 있는 듯하다.
그는 “낮에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밤에 쓸 것이 생긴다”고 한다. ‘문제’를 생각하면 글 쓰는 영감은 대개 어렵지 않게 얻는다는 것이다. 그 문제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빈곤, 전쟁과 같은 인류의 난제들이다. 또 고통스럽기 때문에 회피하기 쉬운 우리 안의 편견과 우울일 때도 있다. 대개 이런 문제를 다룬 글은 무겁기 십상이다. 재미도 없다.
그런데 리자퉁의 글은 무게감이 거의 없다. 문장도 소박하고 담백하다. 담담한 문장을 따라가다 마지막에 이르면 이야기 하나가 형체를 드러낸다. 아름답거나 슬픈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평소 지나쳤던 내면의 결핍이나 사회 현상을 마주보게 한다. 놀라운 힘을 갖고 있는 글들이다. ‘저는 여덟 살입니다’를 읽어본다.
‘나’는 여덟 살이다. 나는 독수리가 무섭다. 종종 땅으로 내려와 작은 동물을 사납게 잡아채기 때문이다. 하루는 엄마에게 독수리가 아이도 잡아가는지 묻는다. “아이들은 감히 못 잡아간단다. 어른들이 항상 아이들을 지킨다는 걸 독수리도 알거든.” 종족 간 전쟁으로 아버지가 숨지고 엄마마저 학살을 당한다. 나는 큰길을 홀로 걷는다. 이틀 동안 빵 한 조각만 겨우 먹는다.
힘이 없어 걷기도 힘들다. 바로 그때,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나를 쫓아온다. 내가 가면 독수리도 가고, 내가 멈추면 독수리도 멈춘다. 어디선가 지프차 한 대가 온다. 그 차에서 한 사람이 내린다. 그는 카메라로 나를 찍는다. 그때도 그 큰 독수리가 내 근처에 앉아 있다. 나는 그가 나를 구해주길 기대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사진만 찍고 가버린다. 독수리가 나를 향해 점점 다가온다.
짐작했겠지만 이 이야기는 케빈 카터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촬영한 유명한 사진 ‘독수리와 어린 소녀’(1994)을 보고 상상해 쓴 글이다. 전쟁으로 무고하게 희생되는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 부모 잃은 아이들의 비참을 떠올리게 된다. ‘먼 곳에서 온 아이’ ‘지붕’ ‘높은 담을 헐어버리자’ 등은 가진 것이 없어서,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외롭고 쓸쓸한 사람들의 얘기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얼마나 생명과 사랑의 길에서 멀어져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이미 다 컸다’는 용서에 관한 이야기다. 유복한 환경에 자란 ‘나’는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 어른이 된 나는 어느 날 판사였던 아버지에게 이런 얘길 듣는다. “나는 단 한 번 사형 선고를 한 적이 있다. 그 피고인은 너의 친아버지였다.” 나는 지금의 아버지를 용서하기로 한다.
대만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차표’다.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역에 버려진 ‘나’는 수녀들이 운영하는 센터에서 자랐다. 대학 졸업 후 결혼을 앞둔 나는 버려질 때 내 옷 안에 있었던 차표를 들고 생모를 찾아 나선다. 어렵지 않게 부모를 찾았지만 두 분 다 세상을 떠난 뒤였다. 얻은 것은 가난하게 살았던 어머니의 베갯머리에서 나온 봉투였다.
봉투 안에는 차표 묶음이 가득했다. 고향과 센터가 있는 도시를 오가는 여정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보기 위해 정기적으로 기차를 탔던 것이다. “어머니가 너를 버린 건 더 나은 환경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었어.” 봉투를 건네준 이의 말이다. 먼발치에서 아들이 자라는 모습을 평생 지켜봤던 어머니의 사랑을 담고 있다. 차표는 리자퉁이 고아원 봉사를 다닐 때 들은 얘기가 모티브가 됐다.
유머와 위트가 빛나는 글도 많다. 살아있는 한 완벽한 하루를 누릴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완벽한 하루’가 대표적이다. 울다가 웃다가 한다. 가톨릭 신자인 리자퉁은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가 내 글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다고 느낀다면 가장 큰 이유는 내게 신앙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대만의 스테디셀러다. 정작 리자퉁은 이걸 ‘소인의 득세’에 비유한다. 1939년 중국 상하이에서 출생한 리자퉁은 미국 버클리대에서 시각장애인인 교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대만 칭화대 명예교수다. 2002년 박유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해 교육 소외 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그의 종증조부는 청나라 말기의 정치가 리훙장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