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연일 서로를 향해 거친 말과 비아냥을 주고받으며 해묵은 감정싸움만 벌이고 있다. 지난달 말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 이후 파행 중인 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한 대화와 협상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당 지도부나 중진 등 상황을 중재해야 할 위치에 있는 인사들마저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쏟아내며 ‘정치 실종’ 상태를 연장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수도권 민생대장정에 나선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22일 페이스북에서 최근 각종 경제지표 악화를 거론하며 “지금 대한민국 경제는 최악이다. 이런 최악의 경제를 만든 문재인 정권은 최악의 정권”이라고 공격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진짜 독재자의 후예에게는 말 한마디 못하니 김정은 대변인이라고 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것에 이어 연일 문 대통령을 향한 말폭탄을 퍼부은 셈이다.
당 중진 의원들도 거들고 나섰다. 6선인 김무성 의원은 원내대표·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문재인정부는 세금으로 ‘폭망’(폭삭 망했다는 뜻)한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한국당이 국민과 함께 조세저항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회부의장인 이주영 의원도 문 대통령의 ‘독재자의 후예’ 발언을 언급하며 “‘남로당의 후예가 아니라면 천안함을 다르게 볼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비꼬았다. 정진석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유승현 전 김포시의회 의장의 아내 살해에 여성단체들이 침묵하는 것을 언급하며 “여성단체의 ‘여’자가 계집 녀(女)가 아니고 더불어 여(與)냐”고 꼬집었다.
여당은 한국당의 말폭탄에 비아냥으로 응수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황 대표를 향해 “원내가 아니니까 원외로 다니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제1야당 대표로서 강경 발언이 능사는 아니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사람이 국민에게 걱정스러운 발언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고 훈수했다. 황 대표가 원외임을 부각하며 깎아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같은 당 이종걸 의원은 최근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가 ‘문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법시험에 올인했다’는 글을 SNS에 올린 것과 관련해 “고시 장수생을 했던 본인의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비꼬았다. 친문재인계 초선 황희 의원도 한국당을 향해 “제대로 하지 못해 탄핵당한 사람들이 주제넘게 나서고 있다”며 날 선 발언을 퍼부었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간 국회 정상화 논의는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오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한국당이 국회 정상화 조건으로 요구한 고소·고발 취하와 사과 요구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박찬대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민주당은 다만 야당과의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의는 계속 이어가기로 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결국 꼬인 정국의 최종적 책임은 집권당에 있다”며 “여당이 야당에 좀 더 양보하고 국회로 돌아올 명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 여권이 2006년 초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사학법 개정 철회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은 그때 여권의 사학법 개정 추진에 반발한 한나라당의 장외투쟁으로 여야 대치가 넉 달 넘게 지속되자 여당 원내대표인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불러 여당의 양보를 이끌어냈다. 다만 여야의 말폭탄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노린 측면도 있는 만큼 국회 정상화 이후에도 여야 간 공방은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종선 신재희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