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은 중재재판부의 결론만 남겨뒀다는 관측이 크다. 고형권 전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해 11월에 “론스타 문제가 내년 1분기 정도에 결론이 날 수도 있다”고 국회에서 말했었다. 론스타가 하나금융지주를 상대로 국제상공회의소(ICC)에 제기한 소송은 최근 론스타의 패배로 끝났다.
5조원이 넘는 금액이 다퉈지는 가운데 국민정서는 “론스타는 ‘먹튀’이고, ISD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론스타의 하나금융에 대한 패소는 일견 낙관적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금융위원회는 ICC 결과가 알려진 날 브리핑을 열어 “상식적으로 보면 정부의 ISD 판정에 불리할 게 없다”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6개 정부부처가 2012년 분쟁대응단을 구성한 뒤 극도로 발언을 자제해 왔던 점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었다.
다만 주무부처인 법무부는 금융위와 달리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중재재판부의 결론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당사자 코멘트는 조심스럽다는 얘기다. 국제통상 전문가들 틈에서도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전망하는 시각이 제기된다. 임병덕 미국변호사(법무법인 천고 고문)는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정부의 승소 가능성은 50% 미만”이라고 밝혔다.
론스타 ISD의 주된 쟁점은 ‘한국 정부가 고의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했는가’이다. 임 변호사는 “정부는 ‘차별적 대우가 없었다’고 주장하나, 팩트가 불리하다”고 말했다. 론스타는 2012년 5월 이명박 전 대통령 앞으로 중재의향서를 보내며 당시 한국 정치권이 여론을 의식해 “‘먹튀’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공표했다고 주장했다. 하나금융과의 계약 시에는 정부가 “매매대금을 낮추기 전에는 허락할 수 없다”는 취지의 언론자료를 제공했다는 내용도 중재의향서에 담았다. 이 같은 일은 사실로 증빙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임 변호사의 생각이다.
“론스타의 불법행위에 대해 수사가 진행 중이었다”는 반론도 국민에겐 익숙하다. 하지만 임 변호사는 중재재판례들에 비춰볼 때 국내법이나 국내 상황을 얘기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엘파소 에너지’는 1989년 아르헨티나 정부의 외국투자촉진정책에 따라 아르헨티나 전력회사에 투자했다. 이후 “1999년 아르헨티나의 위기대책 법안이 만들어져 투자 가치가 떨어졌다”며 ISD를 제기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국가적 경제위기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맞섰지만 소송은 “아르헨티나 정부의 처사는 투자협정(BIT)상 공정하지 않았다”로 결론 났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한국 정부가 그나마 배상 책임을 낮추려면 차라리 ‘막후 교섭’을 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중재재판 제도의 설립 이유부터 ‘준거법’인 BIT의 취지 자체가 모두 투자자 권익 보호이며, 따라서 정부보다는 투자자에게 유리한 판이라는 얘기다.
앞선 하나금융의 론스타 상대 전부승소를 ISD 결론 예측의 근거로 삼을 수 없고, 낙관적으로 보기 더욱 힘들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하나금융 역시 외국인 투자자가 70%가량인 금융회사이며, 그 성격을 한국 정부로 유추하는 것은 대단한 논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