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자동차 제작 결함을 확인하고도 ‘리콜’ 대신 법적 근거가 없는 ‘무상수리’를 권고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안전보다는 제조사의 반발을 우선시한 부적절한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지난해 여름 BMW 차량 엔진 화재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기 전에 유사한 사례를 인지했지만 손놓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BMW 포비아(공포증)’로까지 확대된 사건에 사전 대응이 안일했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이 22일 발표한 ‘자동차 인증 및 리콜 관리실태’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토부는 자동차의 제작결함을 확인하고도 제조사 반발 등을 이유로 리콜 대신 공개 무상수리 권고 결정을 내렸다. 무상수리는 리콜과 달리 시정률(수리되거나 원상회복된 비율) 보고, 소유자 개별통지, 신문에 리콜 내용 공고 등의 의무가 없다.
교통안전공단이 2013년 1월∼2018년 6월 제작결함조사 결과에 따라 리콜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60건 가운데 9건이 무상수리 권고로 처리됐다. 9건이 이렇게 처리되면서 안전운행에 문제가 있어 리콜을 받아야 할 106만대에 달하는 차량이 법적 근거가 없는 단순 무상수리를 받았다. 일반적인 리콜의 경우 시정률이 82.6%인 반면 무상수리로 권고된 9건은 시정률이 평균 17.8%에 그쳐 안전운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국토부는 2014년 7월과 9월 두 차례 A사에 차체 부식으로 안전운행에 지장을 주는 차종에 대해 리콜을 실시하라고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A사가 반발하며 리콜을 이행하지 않자 구두로 무상수리를 통보했다.
국토부는 또 결함이 있는 자동차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뒷짐만 지고 있었다. 결함 있는 자동차가 리콜 없이 판매됐는지 점검해야 함에도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37개 자동차 제작·수입사가 리콜 대상 차량 7010대를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판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소비자들은 결함 사실을 모른 채 차량을 구매했다.
감사원은 국토부 장관에게 무상수리 권고 조치를 내린 9개 차종의 리콜 여부를 다시 검토하도록 했고, 리콜 대상 자동차가 시정 없이 판매되지 않도록 조사할 것을 통보했다.
국토부와 교통안전공단은 BMW 차량 엔진 화재 사건에도 늑장 대응했다. 교통안전공단은 2017년 11월 BMW 차주로부터 “BMW에서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 냉각기 부분의 슬러지로 인한 화재로 판명받았다”는 내용의 신고를 접수했지만 분석·조사를 하지 않았다. 2015년 8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BMW 차량 엔진 화재 사건 원인과 동일·유사한 신고 건수는 모두 6건이었다.
이상헌 기자 kmpap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