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투자·경상수지… 실물지표 전망 모조리 ‘잿빛’

입력 2019-05-23 04:0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이어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률을 낮춰 잡았다. 제조업·자영업 위기로 소비·투자가 부진한 상황에서 수출까지 휘청대자 성장률이 2%대 초반으로 가라앉고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실물지표들이 모두 바닥으로 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경제를 흔드는 ‘바람’은 안과 밖을 가리지 않는다. 대외적으로 미·중 무역전쟁과 반도체 수요 회복 지연, 대내적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이 자리 잡고 있다.

저성장 고착화가 우려되자 KDI는 ‘0%대 저물가’를 고려해 기준금리 인하를 포함한 통화정책 완화를 권고했다. 경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나랏돈 풀기’에 확장을 얘기하면서 동시에 재정건전성도 언급했다.

KDI는 22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낮추면서 실물지표 전망치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소비와 투자, 수출 등에서 어느 하나 ‘좋은 소식’이 없다는 분석이다. 다만 정부의 확장재정이 가져올 효과에 대해선 기존 전망을 유지했다. 올해 470조원 본예산, 추가경정예산 6조7000억원이 힘을 발휘해 정부소비 증가율 1.1%를 지켜낼 것으로 본 것이다. KDI는 국회에서 추경안이 이른 시일 안에 통과하면 정부 예측대로 성장률을 0.1% 포인트 밀어올릴 것으로 추산했다.

KDI는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을 지난해 하반기 발표했던 전망치(2.4%)보다 떨어진 2.2%로 봤다. 수출(물량 기준) 증가율은 3.7%에서 1.6%로, 수입(물량 기준)은 2.5%에서 -1.0%로 하향 조정했다. 경상수지는 수출 증가세 둔화, 교역조건 악화로 흑자 폭이 점차 축소된다고 관측했다. 올해 경상수지 전망치는 582억 달러로 지난해(764억 달러)와 비교하면 23% 감소할 전망이다. KDI는 “한국 수출의 약 40%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기 둔화가 가속화하고 있고,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 수출시장이 위축되면서 한국의 성장을 제약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올해 투자 부진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설비투자 전망치를 기존 1.3%에서 -4.8%로 6.1% 포인트나 낮췄다. 반도체 호황이 끝나면서 수출이 조정 국면에 들어선 타격이 컸다. 건설투자도 기존( -3.4%)보다 더 악화(-4.3%)할 것으로 추정했다.

노동시장 정책 변경에 따른 ‘단기적 부작용’을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성장세 둔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부작용에 대해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에다 KDI는 내수 위축에 따른 ‘0%대 저물가’를 우려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4개월째 0%대를 찍고 있다. 가계비 경감 대책 등에 따른 공급 측 가격 인상 억제와 수요 부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수요 급감→가격 하락→생산 위축→경제 공황’이라는 디플레이션 공포까지 거론된다. KDI는 “현재 상황이 디플레이션은 아니지만 디스인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재정·통화·금융 긴축으로 과도한 저물가 현상이 빚어진다는 해석이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 완화를 강조했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은 “낮은 물가 상승세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나타날 부작용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 기준금리 인하 등을 포함한 통화정책의 적극적 역할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KDI는 재정정책에서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필요하지만 재정건전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40% 안팎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실장은 “경기 부진에 따라 확장적 재정정책은 맞지만 세수 등 예산 제약을 유념해야 한다”며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 등을 고려할 때 국가채무비율이 40% 안팎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할 필요성은 있다”고 했다.

세종=전슬기 전성필 기자 sgj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