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슈틸리케 황태자’ 이정협, K리그2 지배 중

입력 2019-05-22 20:01 수정 2019-05-22 23:48
부산 아이파크의 공격수 이정협(왼쪽)이 지난 20일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부천 FC 1995와의 2019 K리그2 경기에서 골을 넣은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이정협은 최근 7경기에서 7골을 몰아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잊힌 신데렐라가 부산의 친정에 돌아왔다. 전 국가대표 공격수 이정협(28)이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다시 입고 K리그2에서 화력을 뽐내고 있다. 이정협은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려웠던 지난 3년의 세월이 제겐 약이 됐다. 다시 한번 내 이름을 알리고 싶다”며 재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정협은 부산이 추구하는 공격 축구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정협은 최근 7경기에서 7골을 몰아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지난 20일 부천 FC 1995를 상대로는 단 두 차례의 슈팅으로 2골을 터뜨리는 백발백중의 감각을 자랑하기도 했다. 어느새 광주 FC의 펠리페 실바(10골)에 이은 리그 득점 2위다.

신데렐라라는 별명은 과거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체제 아래서 대표팀에 깜짝 발탁된 후 중용되며 붙여졌다. 2015 호주 아시안컵 직전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교체 투입으로 A매치에 데뷔한 이정협은 득점까지 하며 눈도장을 찍었다. 그는 아시안컵 4강전에서 골을 넣는 등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당시 군 복무를 위해 상주 상무에 ‘상병’으로 소속돼 있다는 점도 화제였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이정협을 “2015 아시안컵에서 빛난 스타 5인” 중 하나로 꼽기도 했다.

하지만 신데렐라의 축구 인생은 좀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2015년 제대 후 합류한 원소속팀 부산은 그해 2부리그로 강등됐다. 이정협은 울산 현대와 J리그의 쇼난 벨마레로 임대 갔지만 부진과 부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간 태극마크와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1년 반 넘게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며 월드컵과 아시안컵은 화면으로만 지켜봐야 했다.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이정협은 한층 단단해졌다. 그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가는 동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며 “저를 강하게 만든 시간이었다”고 담담히 고백했다.

올 시즌 고향 팀 부산으로 돌아온 이정협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 한다. 일차적인 목표는 1부리그로의 복귀다. 2년 연속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좌절한 부산이기에 더 간절할 수밖에 없다. 이정협에게도 자신의 성적보다 팀이 더 중요하다. 펠리페와의 득점 경쟁에 관해 묻자 그는 “득점왕보다도 팀의 승격이 우선”이라고 단언했다.

승격에 있어 가장 큰 라이벌은 광주다. 7승 5무로 리그 무패를 달리고 있는 1위 광주는 부산보다 승점 2점 앞서 있다. 부산은 화끈한 공격력으로 선두를 탈환하려 한다. 리그가 개막한 지 세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부산은 도합 서른 골을 뽑아내며 1·2부리그 합쳐 최다 득점을 기록 중이다. 이정협은 “선수들도 모두 반드시 광주를 넘어서겠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경쟁심을 나타냈다.

승격 다음으로 이정협이 바라는 것은 태극마크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국가대표를 꿈꾼다고 말하는 그다. 이정협은 “폭넓은 활동량과 제공권 장악은 나만의 강점”이라며 “꾸준히 노력해 대표팀에 다시 들고 싶다”고 소망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