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0만명의 건강 정보가 담긴 ‘바이오 빅데이터’를 구축해 이를 신약 개발에 활용하기로 했다. 신약과 신의료기기의 원활한 시장 진입을 위해 규제도 완화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수사와 ‘인보사 사태’ 등으로 휘청이는 바이오산업이 재도약할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련 8개 부처는 22일 충북 오송 CV(커뮤니케이션&벤처)센터에서 열린 바이오헬스 국가비전 선포식에서 이런 내용의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을 공개했다. 바이오헬스 분야 연구·개발(R&D)에 대한 정부 투자를 연간 4조원 이상으로 늘려 제약 및 의료기기 부문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지금의 3배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행사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는 바이오헬스산업을 3대 신산업으로 선정했다”며 “2030년까지 제약, 의료기기 세계 시장 점유율 6%, 500억 달러 수출, 5대 수출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를 합리화해나가겠지만 국민의 건강과 생명, 생명윤리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방문은 현 정부 3대 경제 기조 중 하나인 ‘혁신성장’ 되살리기 차원이라는 평가다. 행사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동행한 데 대해서도 청와대가 시스템 반도체와 바이오헬스, 미래형 자동차 육성에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정부는 암, 희귀난치질환 등을 앓는 환자 40만명과 건강한 일반인 60만명의 유전체 및 건강상태 정보를 담은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를 2029년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아 정보를 수집한 뒤 이를 맞춤형 신약과 신의료기술 개발에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데이터 중심병원’을 지정해 병원에 축적돼 있는 임상진료 정보도 반영한다.
신약과 신의료기기의 시장 접근성도 높인다. ‘인공지능 신약개발 플랫폼’을 개발해 신약개발 비용 및 시간을 절반 정도로 줄인다. 희귀난치질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인증된 혁신 의료기기에 대해선 허가 심사 특례를 지원한다. 혁신형 제약기업이 개발한 신약은 ‘신속심사’를 거쳐 빠르게 시판할 수 있게 한다.
금융 및 세제 지원도 강화한다. 2022년까지 15조원 규모의 ‘스케일업 펀드’를 조성해 이 자금을 연매출 1조원 이상의 국산 신약 개발을 지원하는 데 쓴다.
시민단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속심사’를 거쳐 나온 의약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에게 투여되는 건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이미 일반의약품에서 이런 ‘조건부 허가’가 시행되고 있는데,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공개한 자료를 보면 2010년 이후 조건부 허가된 23개 약에 대한 부작용이 1500건 넘게 보고됐다.
빅데이터 구축도 환자 동의를 받는다지만 실제 자신의 건강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 우려가 제기된다.
김영선 박세환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