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제조업 노동자의 작업환경이 백혈병 발병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부 측 조사 결과와 관련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공식 반응을 자제했다. 다만 임직원들이 안심하고 근무할 수 있는 안전한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속해서 노력하겠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이 22일 발표한 반도체 제조업 근로자 역학조사 결과에 대해 “반도체 사업장과 질병의 연관 여부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문제제기가 돼 왔고 그에 따른 조치도 취해 왔다”면서 “공단의 역학조사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더 안전한 사업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번 조사 결과가 업계 전반에 관련된 것인 만큼 개별 기업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낼 사안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논평을 내고 “10년의 추적조사 약속이 지켜졌고 의미있는 결과를 얻어 다행”이라며 “연구 결과가 왜곡되거나 악용되지 않고 반도체 노동자 건강권을 보호하는 데 올바르게 이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연구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점, 작업환경·화학물질 자료의 한계로 발병 원인을 좁히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꼽았다.
반올림 측은 “취합된 2014개 제품의 물질안전보건자료 40%에 ‘영업비밀’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정보의 질이 낮았다”며 “안전보건정보에 영업비밀이 남용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법과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자산업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온 반올림은 지난 3월 14번째 집단산재를 신청했다. 그동안 반올림을 통해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는 137명이다. 이 중 43명이 공단이나 법원을 통해 산재를 인정받았다. 직업병을 제보한 노동자도 616명에 이른다.
법조공익모임 박애란 변호사는 “핵심 쟁점인 업무상 인과관계를 근로자가 입증해야 한다는 자체로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며 “그동안 반도체산업재해 관련 통계와 연구결과들이 쌓여 왔고 같은 맥락에서 이번 고용부 역학조사 결과도 역학관계를 입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이번 연구에 10년이 걸렸다. 정부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일을 피해자가 밝히는 것은 어렵다”며 “산재를 입증하는 책임을 정부가 나눌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성열 박상은 이가현 기자 nukuva@kmib.co.k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