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과 소통 위해 고상한 언어보다 쉬운 말 고집”

입력 2019-05-23 04:01

“정치는 결국 말과 글의 권력이다.”

노무현정부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사진) 작가는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노무현의 말’을 담당했던 강 작가는 2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고상한 언어보다 쉬운 언어를 고집했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수많은 기록과 글을 남겼는데, 집필에 전념한 이유는.

“대통령 재임 동안 본인이 경험하고 배운 것들을 기록으로 남겨서 국민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셨다. ‘소수가 누린 것을 다수가 누리는 것이 역사의 진보다. 이를 위해 나의 국정 경험을 글로 공유해야 한다’고 하셨다.”

-소탈한 연설이 인기가 많았다. 그에게 말과 연설은 어떤 의미였나.

“국민과의 소통 방식이다. 즉 국민이 알아듣기 쉽게 소통해야 한다는 것인데, 항상 제게도 ‘국민 눈높이에서 중학생도 알 수 있는 수준으로 써야 한다’고 주문하셨다.”

-일각에서는 거칠다는 비판도 있었다.

“대중 친화적이고, 대중과 괴리되지 않은 말과 글이었지만 ‘대통령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트집 잡기가 있었다. 소위 ‘먹물’이 봤을 때 마뜩치 않았을 거다. 본인이 자라온 환경이 있는데 대통령이 됐다고 하루아침에 언어 습관을 바꾸는 게 안 된다고 하셨다. 말과 글을 고상하고 매끄럽게 하는 것보다 잘 전달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다.”

-노 전 대통령은 ‘정치는 돈과 권력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말과 글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는 말과 글로 설득하고 움직이는 건데 지도자가 그걸 못하면 되겠나. 옛날에는 공공연히 국가정보원이나 검찰 동원하고 돈으로 매수하지 않았나. 돈도 주고 겁도 주고. 노 전 대통령은 그게 가능하지 않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설은.

“‘독도는 우리 땅’ 연설(2006년 4월 25일 한·일 관계에 대한 특별담화문. 독도 문제는 영유권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의 문제라는 내용)이다. 본인의 생각을 가장 정제된 문장으로 적었는데, 그 자체로 명문이다. 나는 전혀 관여 안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연설비서관에게 강조했던 자질은.

“아무래도 대통령의 생각을 읽는 능력 아니었겠나. 말귀를 잘 알아들어야 했다. 대통령의 지적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잘 소화해서 다시 지적받지 않도록 했다.”

-요즘 정치인들의 막말이 심하다는 비판이 많다.

“말할 가치도 없다. 자기 편만 끌어모아서 장사하겠다는 거다. 패거리는 좋아할 테니까. 그건 정치가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가장 생각나는 일화는.

“책임감이 강한 분이셨다. ‘다음 정부에 부담주지 말아야 한다’며 임기 마지막인 5년차 때도 밀린 과제들을 다하려고 하셨다. ‘개혁과 통합을 하겠다고 해놓고 별로 이룬 게 없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의 힘으로 가야지 대통령 권력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없더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가 한국 정치에 남긴 가치와 유산은.

“시민참여다. 시민이 정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나서는 건데, 노무현 시대에 참여민주주의가 싹을 틔웠다고 본다. 대통령 묘비석에 있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그 말이 곧 결론이고 방향이다.”

-서거 10주기 슬로건 ‘새로운 노무현’이 함축하는 바는.

“시민민주주의를 꽃 피우자는 거다. 이전의 노무현이 추모 대상이었다면 새로운 노무현은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노무현이 돼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그의 정신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