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 “나락 떨어지는 착한 의사에 푹”
지난해 7월, 대본을 처음 받아든 남궁민은 의사 나이제의 ‘파격’에 매료됐다고 한다. 단숨에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나이제는 주사를 사람을 살리는 일이 아닌 가짜 병을 만드는 데 쓰는 의사다. 악을 벌한다는 그의 설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렸다.
나이제에게 할리우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다크 히어로’란 애칭이 붙었던 이유다. 선한 의사였던 그는 재벌에 의해 나락으로 떨어진 후 변모한다. 형집행정지 권한으로 상류층에게 특권을 주는 교도소 의료과장을 비롯해 재벌과 차례차례 맞부딪친다.
악을 응징하려 선 대신 악을 택한다는 설정은 법이나 양심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고착된 사회 부조리를 환기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불의를 보거나 억울한 일을 당해도 넘어가야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요. 나이제는 자신의 결심을 흔들림 없이 실현해나가죠. 그런 점이 시청자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드렸던 것 같습니다.”
남궁민은 열정적이면서 차갑고, 정의로우면서도 비굴한 나이제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해냈다. 치열한 노력 덕분이었다. 촬영 중 자신의 연기를 검토하며 쓴 메모만 150장에 달한다.
“대본을 냉정하게 대하는 법을 배운 작품이었습니다. 상황에 맞는 감정선을 적절히 표현하는 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기예요. 꾹꾹 누른 발성이나 행동에서 절제미를 살리고자 했습니다.”
극 후반부엔 스토리가 늘어진다는 의견이 있었다. 나이제가 위기를 맞고,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이 되풀이됐던 탓이다. 그는 “빡빡한 드라마 제작 환경상 변화를 주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 ‘네 꿈을 펼쳐라’(EBS·1999)로 데뷔해 어느덧 배우로서 20살을 맞았다. 2년 전 ‘김과장’(KBS2)으로 전성기를 알린 남궁민은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동력은 직업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온다. 그는 “힘들 때도 좋은 연기를 보면 열정이 다시 솟아오른다”고 했다.
“연기는 사랑과 비슷한 것 같아요. 때로는 싫다가도,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행복을 줘요. 고통스러운데 조금씩 나아질 때의 희열도 있고요. 부족함을 늘 고민하면서 발전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김병철 “잘된 작품에 운좋게 승선한 것”
김병철의 악역은 뭔가 다르다. 인간미가 툭툭 묻어나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악인을 매 작품 만들어낸다. 전작 ‘SKY 캐슬’(JTBC)의 차민혁이 그랬고, 이번 작품의 선민식이 그랬다.
그는 “캐릭터가 마주한 상황과 행동의 개연성에 주목하는 편”이라며 “선민식은 선민의식에 찬 딱딱한 인물이지만, 필요할 땐 한껏 유연해지기도 하는 인물이라 흥미로웠다”고 했다.
선민식은 나이제, 이재준(최원영)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엘리트 의식에 젖은 인물로 나이제 부임 전 서서울 교도소 의료과장이었던 그는 범법을 일삼는 적폐의 온상이었다.
“감옥에서 근무하는 의사란 소재가 특이해 끌렸어요. 차민혁과 선민식은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면이 있어요.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선민식의 모습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첫 주연이었지만 이질감이 없었다. 출중한 연기 실력이 한몫을 했다. 무엇보다 김은숙 사단의 일원으로 ‘태양의 후예’(KBS2)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이상 tvN) 등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덕분이었다.
작품의 잇따른 흥행에 안목이 남다르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잘됐던 작품에 운 좋게 승선했을 뿐”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작은 감초 역이라도 더 달콤해지기 위한 고민을 작품마다 담아냈던 결과이기도 했다.
“시청자분들과 공명할 수 있는 지점을 찾곤 합니다. 인물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부분들을 추가하려고 해요. ‘SKY 캐슬’에서 차민혁이 아내 노승혜(윤세아)가 차려준 사발면을 구겼다가 우스꽝스럽게 슬쩍 펴는 것도 추가했던 부분이었죠.”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한 그는 2001년 연극 ‘세 자매’로 처음 얼굴을 알렸다. 최근엔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조연상을 받으며 ‘대세’임을 입증했다. 그는 “사랑을 받았다는 의미에서 기쁘고 감사하다.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찾아뵙고 싶다”고 했다.
“연기는 갇혀있지 않고, 다양한 인물이 돼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직구를 던져서 승부를 보는 직선적 캐릭터나 일상적 인물도 연기해보고 싶어요. 우선 푹 쉬는 시간을 가질 겁니다(웃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